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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서

 갱(@nonggubabo711 )

  시험 기간은 재미 없다. 부활동도 중지고 체육관도 사용할 수 없다. 윤대협은 하교하며 정처없이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무리 서태웅이라도 시험 기간에 나타나진 않겠...지......"

  말하기가 무섭게 자주 만나던 공원 코트에 앉아 웅크리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우리 슈퍼루키를 얕봤네."

  "...?"

  태웅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며 이어폰을 귀에서 빼냈다.

  "음악 듣고 있었어? 인사했는데."

  "못 들었어. 미안..."

  "무슨 일 있어?"

  이 정도로 미안하다느니 사과를 하는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윤대협은 당황스러웠다.

  "넌 표정이 왜그래?"

  한방 먹었다. 서태웅이 되묻는 말에 할말을 잃다니...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윤대협은 흔쾌히 그의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가끔말이야... 모든 게 시시하고 재미없어지는 무료한 느낌 알아?"

  태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참동안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농구 빼고 말하는 건가?"

  서태웅은 자신에게 그렇듯 윤대협에게도 농구가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음... 원랜 농구도 포함이지만, 서태웅 네가 나타나면서부터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 했었네?"

  "멍청이..."

  태웅은 말없이 쪽지를 건넸다. 다시 보니 그가 건넨 쪽지는 티켓이었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수족관과 테마파크가 붙어 있어,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은 지역 기반 테마파크였다. 윤대협은 태웅의 생각을 알 수 없어 티켓을 받지 않고 그를 바라보기만 하자, 태웅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가... 모임 가서 받아온 표래. 친구랑 가겠다고 받아왔어."

  "어, 그말은...... 친구? 아, 그럼 내가 태웅이 친구인가?"

  윤대협의 말에 서태웅이 미간을 좁히며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윤대협은 눈매가 휘도록 웃으며 서태웅의 어깨에 기댔다.

  "난 그냥 친구보다는... 남자친구 같은 게 더 좋은데..."

  "넌 백 일도 되기 전에 헤어진다며."

  누굴까, 저런 헛소문을 퍼뜨린 인간은. 서태웅의 말에 윤대협은 조금 속상해진 참이었다. 하지만 그 맘을 알기라도 한건지 태웅은 다시 티켓을 건네다 못해 윤대협의 손에 쥐여주고 있었다.

  "가기 싫음 가지마, 멍청이."

  "아, 태웅아~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태웅이는 여기 가본거야?"

  "어릴 때. 파란색 거북이랑 고래상어가 멋있었어."

  "...수족관 말하는 거였어??"

  "응."

  "처음부터?"

  "...응."

  대협은 지금까지 태웅이 내민 티켓이 수족관 옆 놀이동산 입장권인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족관이라고? 대협에게 수족관은 항상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어, 언제 가? 거기? 바닷가에 있는 그 수족관? 나 가보고 싶었어!"

  갑자기 말이 많아진 윤대협과 벙찐 서태웅의 얼굴이 마주쳤다.

  "너... 정말 물고기 좋아하네."

  "앗......"

  

  뒤늦게 윤대협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서태웅은 일부러 고른 수족관 티켓이 윤대협 마음에 든 거 같아 만족스러웠다.

 

 

  - 그럼 수족관 표가 좋아요.

  - 수족관? 요즘 애들은 다 그 옆 놀이동산에 간다던데

  - 수족관으로 갈래요.

 

 

  시험기간이라 빨리 끝나기도 했고, 아직 저녁까지 시간이 많이 남읐다. 태웅과 대협은 전차에 함께 올랐다. 손을 꽉 쥔 채로.

  "너희 학교 학생들이 보면......"

  안그래도 눈에 띄는 큰 키다. 서태웅은 신경쓴 적 없지만 그래도 윤대협은 혹시...

  "응? 괜찮아~"

  그러면서도 그의 손엔 힘이 더 들어갔다. 태웅은 말없이 대협에게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잔잔하면서도 느리지 않았다. 멜로디 높낮이가 빠르게 바뀌며, 부드럽게 흘러가는 음악보다 더욱 속도감이 느껴졌다. 대협은 흘끗 태웅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태웅이 자신이 물고기를 좋아할거라며 수족관 표를 가져왔다는 것 자체에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다... 그치?"

  "...응."

  태웅은 이 노래가 어떤 곡인지 제목이랑 가수명을 알려줬다. 윤대협은 그를 보고 있느라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서태웅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상황이 기분 좋았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빠르게 지나가는 롤러코스터와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이 이어졌다. 그들을 뒤로하고 태웅과 대협은 한적한 수족관 쪽 길로 들어갔다. 산책로를 겸하는 곳이라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가볍게 그들을 지나쳤다.

  "와아..."

  태웅은 보무도 당당하게 앞장 서서 걸은 뒤, 입구에서 티켓을 척 하고 내밀었다. 서태웅의 어깨보다도 아래쪽에 머리가 있을만큼 작은 직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수표를 했다. 뒤이어 들어오는 윤대협을 보고도 놀란 것 같았지만 그들은 이미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었다.  

  윤대협의 손이 태웅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길이 어두워진 탓일까? 태웅은 그의 손을 본 뒤 대협의 얼굴을 봤다. 하지만 그는 입까지 벌린 채 기대감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린애같아...'

  태웅은 들뜬 대협 대신 자신이 더 정신도 차릴 겸 가와 마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태, 태웅아. 와... 와아... 저거 고래 아냐???"

  "고래상어."

  "와아... 멋지다...... 진짜 멋지다...아, 저기 가오리!!"

  "거북이도 있어..."

  "와아 돌고래!!!"

  "...해파리도......"

  정해져 있는 관람 순서를 지키고 싶은 태웅과 신나서 여기저기 수조를 옮겨다니며 감탄하는 대협이 서로를 끌고 다니느라 아마존관쯤 되니 두 사람은 전반을 풀로 뛰어다닌 것처럼 지쳐버렸다. 천천히 걸으며 심해관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버렸다.

  "좀 순서대로 다녀..."

  "하하, 그치만 나... 이렇게 신나는 거 처음이야."

  "거짓말. 농구할 때 더 신나 보였어."

  "나 진짜 신났는데 곤란하네..."

  수조의 푸른 물빛이 대협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도 몇 없는 어두운 수족관에서 둘만이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태웅은 저도모르게 입을 열었다.

  "윤대협..."

  "응?"

  "역시 나도, 널 좋아해..."

  대협의 표정이 놀란 채 굳어버렸다. 부담가질까 항상 장난처럼 말하곤 했다. 좀 더 진지하게 마음을 전달한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서태웅은 그동안 그의 말을 곱씹으며 고민해온 것이었을까. 그것을 위해 이 수족관 데이트까지 준비했다는 것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대협은 그대로 서태웅을 끌어안았다.

  "......"

  평소라면 답답하다고 빠져나갔겠지만 태웅은 잠자코 있었다.

  "나도, 좋아해. 서태웅..."

  "응......"

  "너무 좋아..."

  "응......"

 

  마주 끌어안고 있는 두사람 뒤로 해파리들이 둥실둥실 별처럼 떠다녔다.

 

  "근데... 수족관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번 더 봐도 돼?"

  "......응."

 

  이렇게 좋아하다니, 서태웅은 대협의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사실 대답할 의도는 없었다. 그냥 윤대협이 물고기를 좋아했던 거 같아 받아온 표였다. 하지만 항상 물고기를 돌려보내던 윤대협에게 은혜라도 갚은 것일까, 수족관이 마법이라도 부린건지 태웅은 자기도 모르게 대협에게 고백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역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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