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가는 길
찍2 (@qwzx5774)
거침없이 앞질러 림을 향해 달려가던 루카와는 센도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친 호흡을 한껏 가다듬으며 땀을 훔쳐내었다. 농구공은 센도의 것이었다. 루카와는 센도를 향해 공을 던졌다. 7월의 하늘은 아주 맑고 습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아서 더웠다. 스포츠백에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을 때 루카와의 목뒤 쪽으로 차가운 물기가 닿았다. 센도는 어느 틈인지 자판기에서 포카리 2개를 사와 흔들었다.
루카와가 물끄러미 보고만 있자 센도는 턱짓으로 마시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덥다, 더워. 하고 짐을 내려놓은 벤치에 센도는 아무렇게나 몸을 걸터앉았다. 괜찮아? 루카와. 땀 많이 흘리는데, 너 탈수와. 지금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 조금 그늘에서 쉬다가 가자. 하면서 루카와를 제 옆에 끌어다가 앉혔다. 점심쯤에 야외 코트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원온원을 했다. 루카와의 회선은 늘 하나로만 집중되었고 센도는 여러 가지를 보는 편이었다. 고작 1살 차이가 나는데도 말이다. 다른 학교 선배고 서로가 호적수였다. 센도는 능숙하게 루카와를 잘 챙겼다. 루카와가 그렇게 새침한데도 말이다.
“ 다음 주 이 시간에 일정이 있나? ”
“ 왜? 원온원 하자고? ”
“ .... 말고. ”
“ 그럼 뭔데? 데이트 신청? ”
“ 일정 있으면 되었다. 간다, 멍청아.”
“ 에? 간다고? 뭔지는 알려주고 가야지?”
하하, 벌써 가버렸네. 뭔지나 알려주고 가지. 센도는 볼을 겸연쩍게 긁적거렸다. 루카와, 그러고 보니 얼굴이 살짝 붉어졌었는데, 그것이 원온원을 하면서 땀을 흘린 탓인지 아니면 불쑥 들어오는 센도의 말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루카와에게 면역이 없는 말로 놀려먹을 때마다 무표정하고 서늘한 얼굴이 살짝 익으면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입술을 무는 게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하하, 나 참. 정말 나도 중증이네.
루카와, 정말 볼수록 귀여운 애라니까.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루카와가 앉았던 자리에는 무엇인가가 떨어져 있었다. 붉은 실을 엮어서 만든 쿠미히모(くみひも)였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어렸을 적에 센도는 들은 적이 있었다. 쿠미히모는 실 가닥을 많이 엮을수록 견고해지며 만날 수 있는 인연의 끈이 된다고. 루카와의 팔찌에는 방울도 달려 있었다. 누구에게 받은 것일까. 루카와는 기실 중학교 때마다 그를 추종하는 친위대가 있었다.
그리고 루카와는 농구밖에 모르고 보기보다는 맹하고 살포시 웃어서 입꼬리를 올릴 때나 센도가 놀릴 때 귓가가 빨개질 때가 귀여우니 좋아하는 여자애들쯤은 많겠지. 그 아이들에게 받았으려나. 루카와, 사랑 많이 받으니까 말이다.
센도는 손수건에 쿠미히모를 감싸서 스포츠백에 잘 넣었다.
닿게 할 인연이라면, 만나게 해줄 텐데.
/
“ 늦었어, 임마. ”
“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 너무 멀었다고. ”
“ 어떻게 훈련도 아니고 노는 날까지도 늦냐, 너는. ”
“ 하하, 벌써 사람이 많은데? 기대되는걸. ”
이 자식, 센도! 말 돌리자 마! 센도는 크게 웃으면서 눈꼬리를 접었다.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작은 도시가 이렇게 떠들석 하게 인산인해인 것은 여름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하코이치는 모두가 다 함께 윈터컵을 앞두고 승리를 위해 이 축제에 가야 한다고 성화였다. 용맹하고 과감한 의리의 능남의 모든 형제는 함께 한다. 라는 덕규형의 지론에 의해 유카타를 입고 마츠리에 온 것이다. 코시노, 오늘따라. 잘 생겨 보인다? 후키도. 너 임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냐? 재수가 없어. 나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놀림이라고 생각했는지 코시노는 센도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저물녘이 되자 사람들은 점점 더 모여들었다. 등불에 불이 켜지고 신사 앞의 경내의 노점들이 북적였다. 센도는 시끌벅적하게 끌려다녔다. 부원들이 금붕어 낚시에 빠진 사이에 센도는 조용히 무리를 빠져나왔다. 이러한 소란은 나쁘지 않았다. 센도는 유카타 품에 손을 넣었다. 그날, 루카와가 놓고 간 팔찌. 북산 녀석들은 왁자지껄한 편이니 자신처럼 부원들에게 끌려 왔을 수도 있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니 이런 것에 시간을 쓸 바에야 슛연습이나 더 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다 루카와 답네. 센도는 괜스레 웃었다.
“ ...루카와? 쇼호쿠 녀석들이랑 같이 온건가? ”
“ 오자마자 10초 만에 흩어졌다. ”
“ 그렇구나, 혹시 미아가 된 거야? ”
“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멍청아. ”
“ 하하. 농담. 농담. ”
“ .....멍청이. ”
서로 동행인들과 떨어졌으니 함께 걷기로 했다. 유카타의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타닥타닥하는 신발 소리, 신사를 맴도는 한여름 밤의 더운 공기를 식혀주는 청량한 기운이 감돌았다.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루카와도 유카타 차림이었는데 정갈하게 갖춰 입은 모양새가 제법 색달랐다. 유니폼이나 트레이닝복만 보다가 길었던 앞머리를 살짝 끈으로 묶고 있어서 고전 신화에 나오는 여우신 같기도 했다. 유카타 잘 어울린다. 센도의 말에 루카와는 살짝 얼굴을 붉히는 것 같기도 했다.
“ 그나저나 루카와도 이런 곳에 올 줄 몰랐어.”
“ 멍청이. 여기는 우리 집이다. ”
“ 헤에. 루카와. 신을 모시는 가문이구나. ”
“ 정확히는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
“ 내게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
루카와는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부끄러울 때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루카와의 습관이었다. 센도는 발걸음을 멈추고 루카와는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던 거야? 오늘? 루카와는 살짝 센도의 시선을 피하면서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너에게는 빚이 있으니 갚고 싶었다. 루카와는 산왕전이라고 했다. 돌파해야 했는데 원온원 상황에서는 막혔고 그때 센도의 생각이 났다고 했다. 어쩌면, 센도 덕분에 돌파구를 찾은 셈이었다. 네 플레이의 원동력이 되었다니 어쩐지 좀 기쁜데? 센도는 웃었다.
루카와는 귀인에게 은혜를 잎으면 갚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오래전에 인간의 은혜를 입은 어린 여우신이 3가지의 소원을 들어주며 엮은 12가닥의 쿠미히모(くみひも). 은하수 무리가 밤하늘을 비추는 칠석의 밤, 별빛 아래 가장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빌면 여우신이 3가지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그런데 어딘가에 떨어뜨렸는지 잃어버렸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 그럼, 주인에게 제대로 전달 된 것 같은데?"
" 평범한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
" .....이걸 왜 네 녀석이."
글쎄, 여우신이 벌써 내 소원 들어주신 것일 수도.
나의 마음을 전해 달라고, 또 너의 마음을 말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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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 빌러 가자.”
센도는 이곳에서 가장 은하수가 잘 보이는 높은 곳을 알려달라고 했다. 루카와는 신사 뒤에 있는 산의 작은 언덕을 가리켰다. 올라온 곳은 가히 장관이었다. 쏟아질 것 같은 별 무리를 이루는 은하수들이 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이런 곳 처음 와봐. 센도의 말에 루카와는 료타 선배가 너는 이런 곳에 자주 와봤을 거라고 했는데 라며 뾰로통한 얼굴로 답했다. 나, 엄청나게 미움받나 보네. 쇼호쿠 녀석들한테, 어지간히 루카와 뺏기기 싫은가 봐 녀석들. 루카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센도는 크게 웃으며 하지만, 괜찮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넘어준다며 받아쳤다.
“ 별이 정말 많다.”
“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니까.”
“ 곧, 유성우가 떨어질 거다.”
센도 아키라는 이름대로 '빛'과 같다.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이 있다면 녀석일 것이라고. 계속 승부하고 싶었다. 코트 위에서 다시 한번 겨루고 싶었다. 그 승부를 멈추지 않게 하고 싶었다. 루카와는 눈을 감았다. 서로의 손끝이 살짝 닿자 이내 센도는 루카와의 손을 잡았다. 루카와가 센도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소원 빌었어?”
“ 그런 거 알려주면 소원 안 이루어 지는데?”
“ ......멍청이. ”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 사이로 폭죽이 터졌다. 시간은 알 수 없지만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는 것으로 봐서는 이번 축제의 클라이맥스인 모양이었다. 센도는 루카와를 불렀다. 루카와의 바라보는 얼굴에 살짝 벌어진 입술에 센도는 입술을 맞췄다.
루카와, 내 소원은 네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네게 별빛을 받았으니, 나는 눈빛을 주어야지.
너는 어디서든 빛이 난다고, 나는 눈빛으로 말해줘야지. 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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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쿠미히모(くみひも) : 소원 팔찌.
₂ 엄지용, 눈맞춤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