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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흐른다

 리오(@77leooyt)

  물은 흐른다. 한 곳에 고여있는 법 없이. 너무 거대해 언뜻 단단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바다에서도 물은 증발하여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도달한다.

 

  물 곁에 살면 습도가 높은 바람에 적응하게 된다. 내가 물속에 있는 건지 사실 내가 양서류나 어류였나 하는 생각은 물 실린 바람에 옅어진다. 유난히 습도가 높은 날의 새벽에는 아무렇게나 펼쳐둔 잡지나 책들이 저 바다 밑바닥에서 파도에 나부끼는 해초처럼 이리저리 물 실린 바람에 흔들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은 산이 있는 내륙지방에서나 쓰일 법한 말이다. 센도는 아직까지도 새벽이 푸르게 범람해 올 때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고 푸르게 밝아오는 밤도 바다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도쿄에서 건너온 첫해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나고 자란 사람들에겐 당연한 것들. 허울 좋은 말로는 도쿄 시티 보이, 실은 외부인이라는 노란빛 딱지를 붙인 채 적응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온통 푸른 것들 사이에서 센도는 자신을 잃지 않은 채 샛노란 부표처럼 떠다니다 이내 등대로 자리 잡았다. 등대 없는 부둣가는 없다. 등대가 얼마나 파랑과 동떨어져 있든 간에.

 

  잠들지 않는 도쿄의 불빛들이 오징어잡이 배의 등불로, 끊임없이 들려오던 도로 위 자동차 소리가 파도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정말로 별다른 것은 없었다. 밤이 되면 바다는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모든 소리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곤 으르렁대는 파도 소리를 토해내며 소리의 깃발을 꽂아 물로 닿을 수 없는 땅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센도는 유리되어 파란 바다에 잘못 던져진 관상용 노란 물고기처럼 고향이 아닌 곳과는 완전히 섞일 수가 없었다.

 

  몸이 바쁘던 시간은 지나갔다. 남은 것은 그저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하여 성실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뿐. 전에 비해서 정신이 나태해진 것인지 몸이 덜 고생한 탓인지 새벽 늦은 시간까지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낮에 가질 수는 없나 싶어 새벽에 밀려왔다 다시 밀려가는 바다를 쫓아 센도는 낮에 바닷가로 나갔다. 물고기가 잡히는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양동이 챙기는 것을 잊지 않은 날에는 미처 기억해 내지 못한 날과 마찬가지로 시시각각 변하는 동시에 같은 얼굴을 유지하는 물결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가끔 흔들리는 찌에 잠깐 낚싯대를 당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낮의 고요는 밤의 고요와도 달라 좇던 파도에 쫓기다 보면 더 이상 밀려날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센도는 잠이 드는 줄도 모르게 잠에 빠졌다가 잠을 미뤄둔 벌로 기껏 맞춰둔 알람을 닫지 못한 채 늦잠을 자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향하는 고등학생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종종 센도가 생각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센도는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을 위해 그렇게 하곤 한다는 것을 굳이 납득시키려 들진 않았다. 핑계를 대신 대주면 고마운 거지, 그런 생각만 할 뿐. 그들은 또 바다 건너도 아닌 가고자 한다면 얼마 걸리지 않도록 가까운 같은 땅에서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로 가족과 이르게 떨어져 나오게 된 센도를 걱정하기도 했다. 어쩌면 외로움을 탈지도 모른다며 오히려 자신들이 쓸쓸한 얼굴로. 그것도 정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걱정이 오히려 센도를 설득한 것인지, 사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벽에 가만히 이마를 대 보는 새벽도 있었다. 아주 크지는 않은 방에 아주 큰 몸을 벽에 붙이고 이마까지 대고 있으려 치면 저 자신도 웃음이 나올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잠들기 어려운 날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온통 파란 범람의 방에서 센도는 밀려온 새벽에 빛에 뿌리뽑혀 뒹구는, 온통 파란 것에 끌어안긴 노란 물고기였다.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는 중에는 모르고 있다가 오히려 이어지던 소리가 멈춘 후에야 비로소 눈을 뜨는 어떤 날들처럼, 건조한 도시에서는 습도로 비 오기 전후를 때려 맞출 수 있었지만, 거대한 물 덩어리 근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후에 그제야 비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낮과 밤의 경계는 불분명해진다. 많은 날의 바다 근처 새벽처럼. 무작정 잠에 빠지라면 빠질 수도 있고 자지 않으려면 한숨도 자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게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빗소리로 사위가 들어찰 때는 창문 앞에 앉아 턱을 괴고 낚시 중 바다를 들여다보듯 창 너머를 내다본다. 방은 거대한 울림통처럼 창문 너머의 빗소리를 이 벽에서 저 벽으로 반사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점수를 낼 수가 없는데. 생활감이 없는 방이다. 떠날 때를 예정하고 비워두는 것은 아니었다. 굳이 무엇인가로 가득 채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이끼 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제 창문과 더러운 유리 너머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먼지 묻은 더러운 유리는 안에서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았는데, 비로 씻겨도 먼지가 닦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창일 텐데. 쇠 위의 녹색 페인트가 녹으로 벗겨지지 않은 것이 이질적으로 보였다. 짙은 초록의 창틀 너머로는 시큼한 회색빛 하늘과 또 짙은 초록의 나무. 바닷바람이 직접적으로 들이닥치지 않도록 우거진 나무 방향으로 창이 난 방향을 골랐었다. 제가 골랐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고. 바다는 새벽마다 온 방을 뒤덮었다. 물이 가지 못할 곳은 없으니까. 차라리 이럴 거면 바다가 보이는 방이었어도 상관없었겠거니 싶었다.

 

 

 

 

 

  장마라고 해서 장마 기간 내도록 비가 하염없이 쏟아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따가운 작살처럼 태양 빛이 내리꽂힐 때가 있었고, 센도가 아는 농구 귀신이 기어이 농구를 하겠다는 선전포고를 던질 만큼만 비가 올 때도 있었다. 일주일 전의 날처럼.

 

  센도는 아주 드물게도 기분이 더러운 상태였다. 그렇게 부담감을 안고 팀을 승리로 이끌어 료난을 생각하면 센도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했건만. 예상치도 못하게 료난을 패배시킨 쇼호쿠는 료난을 물고 늘어져 기어이 승리와 전국대회 진출권을 쟁취해 갔다. 예상을 벗어나는 쇼호쿠와의 승부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물론 센도가 이길 것을 알고 있을 때의 얘기지만. 패배도 예상 밖의 범주에 있었다. 계산 범주에 넣지 못했던 것을 자책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품은 기대를 저버리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패배는 쓴 법이다. 그렇다고 일주일씩이나 걸릴 줄도 몰랐지만.

 

  오랜만에 소강상태에 접어든 장맛비에 센도는 아침 일찍부터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비가 내리는 날들만큼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말갛게 반짝이는 물결만을 바라보던 센도는 일주일 만에 나아진 기분을 느끼며 료난의 체육관으로 다시 돌아갈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분명 자리를 뜰 때까지는 그랬다. 교차로에서 루카와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기꺼웠다. 예상을 예상치 못하게 넘나드는 루카와는 언제나 센도를 즐겁게 만들었기 때문에.

 

 

  루카와. 루카와. 슈퍼루키. 루카와.

 

  카에데.

 

  쓸데없이 낯간지러운 이름.

 

  언제나 적당히, 최선까지는 다하지 말고. 아껴서 오래오래 불타도록 물러서서 관찰자의 삶을 즐기던 센도의 인생에 나타난 농구 도깨비. 루카와를 상대하려면 언제나 전력을 다했다. 길어지는 게임에 승리를 양보할라치면 마치 센도의 머리통을 그렇게 하겠다는 듯이, 언제 지쳤냐는 듯 골대가 흔들릴 정도의 덩크를 꽂아 넣곤 착지해서는 센도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는 얼굴을, 언제나 힘껏 부딪혀 오는 상대를 거절하고 싶지 않았기에 센도는 언제나 루카와를 대할 때는 전력을 다해야 했다. 이러나저러나 딱히 거절할 이유도 핑계도 없었다. 누가 전부 불살라버리는 바람에.

 

  루카와는 돌아서려는 센도를 붙잡고는 전국대회에서 자신이 넘어야 할 다른 벽에 관해 물었다. 그런 말을 퍽 로맨틱하게 들리게 하는 재주가 루카와에게는 있었다. 얼굴이나 분위기 탓에 제가 착각하는 것인지 루카와가 간지러운 이름을 따라가는 건지. 기분이 나쁠 건 없었지. 섞이지 못하는 센도를 군계일학이라 일컫는 것 같아서. 비록 루카와는 또 별생각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루카와의 이름 탓이려니 한다.

 

  루카와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센도를 붙잡고 잠깐 우물대다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쪽지를 꺼내 내밀었다. 그게 뭔지 붙잡고 물어볼 틈도 없이 루카와는 훌쩍 제 갈 길을 갔다. 센도도 어깨나 으쓱하곤 주머니에 쪽지를 넣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누워서야 센도는 아까 루카와로부터 건네받은 쪽지를 생각해 냈다. 무신경하게 주머니에 구겨 넣은 쪽지는 아까 루카와가 건넸을 때보다 더 구겨져 있었다. 여름날 치곤 선선한 날씨라고 해도 한여름이었다. 현관을 닫는 동시에 욕실 앞 아무렇게나 팽개쳐 둔 옷에서 땀까지 배어난 것 같았다. 다행히 적힌 글자는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만 번져 있었다.

 

 

  마음에 남는 편지를 받아본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항간의 시나 가사보다 우수하다고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시인이 된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더라고 생각하게 될 때도 있었고.

 

  넘겨받은 쪽지는 아마 당연하게도 그런 종류의 것들은 아니었다. 아니, 숫자 말고는 말로써 해석될 글자가 전무했다. 그런데도 쪽지를 넘겨준 이가 무슨 얼굴로 이 숫자들을 적었을지(십중팔구 무표정이었겠지만) 상상하게 됐다. 무던한 얼굴 뒤에는 예민함이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루카와의 성정도 그러한가? 엄청난 고민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려고 눈을 감으면... 다시 뜨면 아침이겠지. 생각보다는 감각으로 사고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루카와였기 때문에. 센도는 생각 속의 루카와를 따라 머리를 비우고 눈을 감았다.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센도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소모적인 경기를 몇 시간 내리 뛰었으니 당연했다. 오래간만의 단잠이었다.

 

 

 

 

 

 

 

 

  루카와는 다음 주 토요일, 그니까 어제, 다시 교차로로 찾아왔다.

 

  그때 센도는 길어진 료난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왜 전화를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은 거지? 루카와에게 전화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루카와는 센도의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 맞다. 내가 쪽지를 받고 한 번도 전화를 건 적이 없지. 웃겼다. 전화번호를 주면 센도가 먼저 전화를 걸어올 줄 알았나? 그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찾아올 거면서 왜 받아 가지 않고 자기가 준 거지. 가방을 뒤졌지만 들고 있던 것이 연습 가방인 탓에 언제 처박아둔지 모를 종이 쪼가리들만 나왔고 필기구는 없었다. 집에 가서 준 번호로 전화 걸게. 센도는 쪽지의 행방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마 전화기 밑에 깔아 두었던 것 같았다.

 

  루카와가 저를 찾아왔기에 당연히 비가 내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평생 바다를 끼고 산 토박이의 레이더를 믿은 거다. 그리고 원래 동물들은 날씨를 잘 알지 않나? 특히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니까 비에 한해서는 상당히 예민할 것 같은데. 코트로 걸어오는 중에도 쳐다본 하늘이 좀 흐리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깐 그쳤던 시간의 비까지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것처럼. 루카와는 약간 깨진 무표정으로 why...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센도는 루카와를 이끌고 비를 피할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아주 멀지 않은 곳에 다행히 간신히 비는 맞지 않을 만한 곳이 있었다. 그 아래에서 비에 묻히지도 않을 만큼 음량을 키워놓은 시끄러운 노래를, 이어폰을 권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고 혼자 두 쪽 다 꽂은 채 노래에 맞춰 손을 튕기는 루카와나 쳐다보고 있었다. 귀가 막혀 있다고 눈까지 잘 안 보이는 모양이지. 센도는 처음 한두 번만 혹시나 눈이 마주치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사실 자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힐끔힐끔 훔쳐봤다. 어지간히 무던한 녀석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자기 쳐다보는 시선조차도 모를 정도로 무던할 줄은 몰랐다. 훔쳐보기를 몇 번, 그냥 대놓고 빤히 쳐다봤다. 왜 쳐다봤는지도 모르지만. 바다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센도도 자기가 크고 까만 남자애를 고양이에 비할 수 있게 될 줄 몰랐다. 루카와와 팀으로 붙을 때도, 원온원을 하는 도중에도, 길어지는 시합에 잠깐 쉬러 앉아 있을 때도 들여다볼 기회가 그렇게 많았는데 고양이 같은 건 맹세코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이게 다 낚시터 터줏대감 고양이 때문이다. 물고기를 잡을 때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친한 척을 하던 그 턱시도 고양이. 그 고양이는 저번 주중에나 처음으로 센도에게 먼저 다가왔는데, 지금까지 낯가렸던 시간은 거짓말인 것처럼 다리에 머리를 문대는 고양이를 두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루카와가 생각났다. 이내 파드득 털고 생각을 지워냈지만. 그러나 그 고양이는 갑작스럽게 머리를 터는 센도에 놀라지도 않고 노란 눈으로 센도나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아마 멍청이라고 할 것 같은 그 눈으로. 그래서 그 이후로 그 터줏대감 고양이를 보면 루카와가 떠올랐다가, 하도 그 생각을 하면서 마주치는 온갖 고양이에 루카와 생각이 튀어나온 탓인지 이제는 이미지가 굳혀졌다. 어차피 입 밖으로 낼 것도 아니고 혼자 생각하는 건데 뭐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루카와와 갑자기 눈이 마주쳤다. 놀라지도 않고 응수해 온다. 오히려 놀란 건 센도 쪽이다. 진짜 그 고양이 같네.

 

  루카와는 이내 왼쪽에 꽂아뒀던 이어폰을 뺐다. 자기를 부른 줄 알았던 건지. 근데 센도는 루카와의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럼 보통 오른쪽을 빼지 않나? 진짜 웃기는 놈일세. 그런데 루카와는 부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센도에게 한 쪽을 권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다할 것도 없이 센도도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받아서 들곤 제 왼쪽 귀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던지다시피 이어폰을 빼냈다. 이렇게까지 음량이 클 건 없잖아. 찡그리고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루카와는 이미 닫힌 입을 조금 더 꾹 닫으면서 어떤 버튼을 재빠르게 여러 번 연타했다. 아마 음량을 줄인 거겠지.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굳이 다시 듣지 않을 이유가 없어 둘 사이에서 달랑거리던 이어폰을 얌전히 다시 귀에 꽂았다. 여전히 음량은 컸지만 그래도 좀 참을 만했다.

 

  한 쪽씩 이어폰을 나눠 끼고 있으려니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루카와도 익숙하지 않은 건지 튕기려고 오른손을 들었다가 이번에는 두 귀에서 이어폰이 빠졌다. 루카와는 다시 입술에 힘을 주고 주섬주섬 이어폰을 주워 들었다. 센도도 웃음을 참느라 아랫입술을 약하게 물었다. 웃어도 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왠지 웃으면 다시 혼자 두 쪽 다 냉큼 껴버릴 것 같아서. 노래는 취향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적막하지는 않게는 해줘서 또 듣지 않을 것은 없었다.

 

  이어폰은 다시 둘의 귀에 끼워졌다. 이번에는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채였다. 다시 귀에서 뽑히지 않게 하려고 둘 다 조금씩 거리를 붙여 앉았다. 음악을 그렇게까지 즐겨 듣지 않는 센도도 루카와의 선곡이 날씨에 맞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팔이 붙어있었다. 눈앞에는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그 너머의 안개 짙은 초록빛. 입을 열고 뭐라도 내뱉으면 아닌 척 집중해오는 정신과 그럼에도 티는 내지 않는 무던한 얼굴. 블랙홀의 중력처럼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지만, 여기는 코트 위가 아니라서 그 소리는 루카와의 안에 남거나 분해되고 소화되는 일 없이 온전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뭐라도 내뱉고 싶진 않았다. 센도는 자신도 모르게 숨 하나도 조심히 쉬고 있었다. 또 이어폰이 빠져버릴까 봐. 팔이...

 

  센도는 고개를 들어 비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맞는 것은 피했지만 숨이 막힐 듯한 습도는 피할 길이 없었다. 오랜 비와 무관하게 더운 바다로부터의 바람은 멀리 떨어진 곳까지 불어와도 여전히 더웠고. 습도와 열기로 끈적거리는 맨살의 팔만 맞닿아 있었는데. 센도의 것만큼이나 끈적한 피부가, 굳이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전해져왔고, 그러나 그 피부가 맞닿아 열기를 더해가는 와중에도 둘 중 누구도 불쾌해하고 있지 않았음을 서로가 알았다. 그저 가만히 팔을 나란히 붙이고 앉아 피부 너머의 피부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아무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새벽의 센도의 이마와 벽처럼. 나란히.

 

  비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번개가 번쩍, 사방을 밝혔고 더 짙은 색을 띄는 구름이 하늘 한 켠을 뒤덮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 그나마 비를 덜 맞을 것 같을 때, 센도와 루카와는 맞닿은 피부로 생각이나 시야를 공유하기라도 한 건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붙어 있던 팔을 떼고 이어폰을 빼내고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섰다가, 다시 센도를 마주 보곤 내일은 꼭 원온원을 하자고 했다. 그래, 내일 비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전화 걸게. 루카와는 대답을 듣고는 이내 빗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센도도 루카와의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센도는 달리는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아까까지 닿아 있던 팔에 손을 올리다 멈췄다. 예전에 아무렇게나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던 추리소설에서 봤었나. 중요한 열쇠를 숨겨둔 범인과 방 안에서 대치하던 중 제3의 적이 갑작스럽게 방문을 두들겼고 범인의 눈이 향한 곳에 열쇠가 있어서 그걸 들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갑자기 왜 생각났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기묘한 공유는 팔을 타고 전해졌을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전해준 일 없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 없이. 둘에게서 둘에게로. 하나에게서 하나에게로.

 

  오늘도 좋은 잠을 자게 되겠지. 저번 주 일요일 이후로는 잠을 설친 날이 없었음에도 그날은 유독 달게 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깨는 일 없이 늘어지게 자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는 축축한 공기와 저도 모르게 긴장했던 몸이 집에 돌아와 풀리며 축 늘어져 정신없이 잘 자느라 루카와에게 전화를 걸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으음... 지금 이 시각에 전화를 걸면 실례지 않으려나?

 

  미뤄뒀던 방 정리를 조금씩 하고 세탁기에 넣어둔 빨래가 다 되었다는 알림을 듣고 빨래를 널고 나서야 센도는 루카와의 집에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센도 아키라라고 합니다.

  ...카에데 있나요?

 

  새삼스럽게 간지럼이 다시 몸을 타고 퍼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루카와와는 어제 만났던 코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루카와는 언제까지 올 거냐고 묻는 센도에 지금 당장 나간다고 응수했다. 그럴 줄 알았다. 센도도 전화를 끊고 대충 채비를 마쳐 집을 나선다.

 

  매번 루카와가 센도 근처로 왔고 이제는 전화도 할 수 있으니까, 다음번에는 어쩌면 센도가 루카와 근처로 찾아갈 수도 있겠지. 다음을 상정한 생각에 센도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언제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해진 거지? 근데 또 그렇다고 청해오는 걸 거절할 생각도 없어서. 이상하게 루카와와는 정말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코트에는 분명 센도보다 먼 곳에서 출발했으면서 먼저 도착한 루카와가 있었다. 그 큰 음량의 노래에 맞춰 페달을 밟았을까? 센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공을 던져 오는 루카와에 가방을 내려두곤 자세를 잡는다. 오늘도 날 즐겁게 해줘, 슈퍼루키.

 

 

 

 

 

  분명 오늘은 맑기만 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센도에겐 비의 징후를 읽어내는 일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주 거세게 내리는 비는 아니었다. 딱 적당히 몸을 식혀줄 정도로만 내리는 비.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시는 비. 몸이 적당히 식혀져 오히려 더 끓어오르는 승리욕을 느꼈다. 피차 저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센도는 눈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루카와에 눈을 반짝인다.

 

 

 

 

 

  빗속에서 원온원을 하다가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루카와도 잠깐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옆에 나란히 누웠다. 루카와가 눕는 동시에 센도의 손날과 루카와의 손날이 맞닿았다. 방금까지 뛰어다녀 맞닿은 손이 뜨거웠다. 마치 어제처럼. 어제처럼, 누구도 피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숨을 가만히 진정시키면서. 몸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받으면서.

 

  그러던 중 루카와가 먼저 닿은 손을 떼고 일어나 앉아 센도를 응시했다. 어제 누구도 먼저 떼지 않았던 것은 그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움이 갑작스럽게 밀려왔다. 무언가를 공유했다고 멋대로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센도는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을 피하고 싶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급작스럽게 거리를 좁힌 까만 눈동자가 센도의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머리카락만큼이나 새까만 눈동자. 낚시터 터줏대감의 까맣고 윤기 나는 털만큼이나 반질거리고 까만 머리카락.

 

  비를 가려주려는 건가? 근데 이건 좀 낯간지럽도록 가깝지 않은가? 아무리 루카와라도 그렇지. 어제처럼 계속해서 눈이 마주쳤고 센도는 이번에는 루카와의 얼굴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한다.

 

 

 

  조금 떨어져야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다의 짙은 안개나 비의 습도가 눅눅히 옮아간 공기는 사방을 흐리게 만들고 그러므로 모든 것이 평소보다 멀게 느껴진다. 비 내리는 날 축축하게 젖어가는 초록 이파리들에,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들, 그러니까 바다의 표면을 기어 오는 저 너머의 짙은 안개 같은 것에 시선은 쉽게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조금 더 멀고 아스라하게 보이니까.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아주 어렸을 때도 이미 키가 컸기에 매번 차지하던 조수석 창밖을 내다보면 미러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두꺼운 구름이 가려 낮에도 적당껏 어두울 때는 조금 더 좋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가로등 밑이었다. 환한 조명이 사정없이 시야를 밝혀내고 있단 말이다. 축축하고 더운 공기는 들러붙는 옷에도 기어이 신경질이 나게 만드는데. 그러면 지금 나는 왜… 왜 이렇게 흐려질 수도 없도록 가깝고 숨겨지지도 않게 빛에 낱낱이 드러난 얼굴에 이렇게도 간절히 닿고 싶은 거지?

 

  간절히? 센도는 센도가 간절하다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린 뒤에나 자기가 간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센도에게 간절한 것은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운은 따라주지 않아도 원하는 것들은, 그리고 이런 종류의 것들은, 보통 쉽게 손에 떨어졌으니까. 그렇다고 쉽게 얻어지는 것에 질린다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마치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언제든 최선의 타이밍이 오는 순간만을 노렸는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결코 최적의 상황은 아닌데.

 

  비는 멈출 기미도 없고. 치켜세운 아이덴티티 같은 머리마저도 비에 사정없이 헝클어졌고. 쫄딱 젖은 데다가. 이런 건 계획에도 없었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언제나 돌아가던 계산기도 눅눅한 공기에 침수된 것 같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바다 근처에 살지 말 걸 그랬나. 그런 생각만. 모든 계산은 멈췄고. 그래서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짓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전례 없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인데.

 

  생각은 아까부터 가파르게 뛰고 있던 심장 박동과.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를 장맛비에 맞춰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데. 어느새 기다란 속눈썹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눈에 들어왔고. 입술에 찬 것이 닿았는데. 그것이 물방울인지. 아니면 다른 차가운 입술인지 알 수 없어서. 눈을 홉뜬 채로….

 

  잊고 있었다. 상대는 방심한 틈을 타 유려하고 재빠른 드라이브인을 꽂아 넣는, 낚시꾼의 기질을 가진 이였다는 것을. 처음부터 내내 둘 중의 낚시꾼은, 찌를 드리우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건 센도 자신이 아니라 눈의 걔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안심하고 방심한 물고기를 낚아챌 기회를 틈틈이 엿보고 있었던 것이, 센도가 아니라 루카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리는 빗속에서 둘은 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시 입술을 맞붙였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루카와가 위에 있었는데도 루카와의 머리카락과 피부를 타고 물방울이 떨어져 가려주는 의미가 없었다. 가려주려고 위에 있던 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루카와의 허리를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마치 셔터처럼 센도와 루카와를 유리시켰다. 비로 단절된 둘만의 세상에 남겨진 것만 같았다.

 

  드리운 비의 장막과 비에 부딪혀 훤히 드러나 버린 가로등의 빛줄기는 둘을 세상과 단절시켰다. 그러고는 둘을 연극의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둘 말고는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숨을 죽인 관객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관객은 초록 잎사귀들과 농구 골대와 가로등과 빗방울과 어느새 저만치 굴러가버린 농구공 뿐.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숨이 막혀 몇 번을 입을 떼고 숨을 골랐지만 마치 다음은 없고 존재하는 것이라곤 오로지 현실과 둘과 물들 뿐이라는 것 같이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이가 크고 작게 부딪혔다. 맞붙으려는 입술은 오직 서로의 것을 향했는데도 계속 미끄러졌다. 혀는 엉성하게 움직였다. 내리는 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계속해서 입맞춤을 퍼부었다.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끝나지 않길 바라는 것인가?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할 바에는 혀로 입천장을 한 번 더 간질이고 입술을 한 번 더 마주 비볐다. 그건 센도 뿐만이 아니라 루카와도 그런 것 같았다. 받는 대로 되갚아 주는 루카와의 플레이처럼. 가끔 허를 찌르고 들어와 자기가 먼저 주기도 하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엎치락뒤치락 굴렀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밤에 세탁기 돌릴 걸. 집에 흙탕물 든 옷으로 잔소리할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으니까.

 

  왜 키스를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이럴 생각이었는지 물을 여유도 없었거니와 필요도 없었다. 들렸거든. 보였거든. 세차게 내리꽂는 빗방울 사이로, 모든 걸 지우는 파도의 소리 틈새로. 똑바로 뜨고 마주한 둘의 두 쌍의 눈이. 빗방울이 눈에 들어가고 코에도 미처 훔쳐내지 못하게 들이쳐 숨이 막혀도. 지지 않겠다고 올라타면 어느새 바닥에 눕혀져 있는 몸에서도, 계속해서 얽히고 비벼지는 혀와 입술과 간지러웠는지 허리춤에서 떼어낸 손가락도. 한여름 낮의 폭염처럼, 사정없이 피부에 작살처럼 꽂히 햇살과도 같이 뜨거운 열기는 비에도 바다에도 안개에도 식혀지지 않았으니까.

 

  마침내 입을 떼고 숨을 고를 때에도 내내 마주치던 눈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향하고 있었다. 숨겨지지도 숨길 생각을 하지도 않은 열기가. 아주 길었던 키스에도. 조금도 옅어지지 않은 채로. 한여름의 태양이 모두 옮겨온 듯이. 바다가 소리를 삼켰듯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한 번의 불면의 밤을 보냈다. 원온원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은 탓인지. 그 격렬한 모든 것에 많은 것을 쏟아붓고 쏟아부은 만큼 다시금 자신에게로 쏟아져 내린 탓인지. 루카와는 지금 곁에 없지만. 당연하게도. 센도는 아직 고등학생이었고, 상대가 무던한 동성의 운동부 후배라고 할지라도, 아직 센도는, 호감을 가진 상대를 제 방에 들이는 것이 부끄러웠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고. 그렇지.

 

  루카와는 아마 침대에서 잠이나 쿨쿨 자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든 잘 자는 애니까. 픽 웃음이 나왔다.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얄미운 코나 쿡 찔러주고 싶었다. 그런 자신이 어색해 센도는 입가를 어루만졌고 다시 좀 전의 키스로 생각이 뻗어나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별말을 하진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애초에 마음이 없으면 그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진 않았을 테지만.

 

  그렇다고 관계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만큼 강렬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아직 아니었다. 어쩌면... 아직, 이라고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지. 아마 루카와는 다음 주말이면 또 그 평이한 얼굴로 목소리로 농구하자고 센도를 불러낼 것이고 센도도 그것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단발성으로 끝났을 것 같던 원온원이 두 주간 이어진 것처럼, 어쩌면 입맞춤도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아직 그렇게까지 큰 마음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초록 창틀 넘어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기어이 모든 바다를 비로 내리게 할 것처럼.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고 내린다면 융기한 땅을 모두 뒤엎을 것이고 모든 땅은 물로 이어질 것이다.

 

  우중에 우뚝 선 형형한 노란 등대는 모래를 뒤엎어 놓을 것처럼 내리는 비에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파도에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것이다. 뿌리뽑혀 나뒹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비는 그칠 것이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왜냐면,

 

  물은 흐르니까. 한 곳에 고여있는 법 없이. 반드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도 카나가와의 바다가, 센도의 방에서 센도를 안았던 범람하는 새벽의 바다가. 반드시 찾아갈 테니까. 신선의 길에는 언제나 흐르는 강이 함께할 것이므로.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되면 단풍 사이로 빛이 환하게 쏟아질 것이므로.

*요청으로 BGM을 본문 하단에 배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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