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풍
메이즈
ㅤ소년은 겨울의 끝자락 2월에 태어나 봄을 맞이했다. 그게 소년의 첫 계절이었다. 자신의 옆에서 따뜻한 물을 꼴깍이며 추운 겨울에 체온 유지를 하며 농구공을 꼭 쥔 아리따운 이 소년은 단 1년 늦게 태어나 한 해가 끝나고 시작하는 날에 태어났다. 매우 추운 1월에 태어나,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1일에 태어난 소년. 싱그러운 눈송이가 쏟아지고,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새로운 해를 상징하는 1월 1일. 제 옆에서 물을 다 마시고 땀을 닦아 핫팩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소년의 이름은 루카와 카에데였다. 키가 아니었더라면 소녀라고 의심했을 것이고, 사실 외관이 아니어도 행동만으로도 소년은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잘 따르는 모습이 위로 형제가 있을 거고, 흔한 그 나이대의 소년들과는 다르게 시건방을 떨지 않는 모습을 보아, 그보다 어리게 보이기 충분했다. 혹은 너무 성숙하거나.
ㅤ센도 아키라는 소년을 성숙하게 보지 않았다. 그보다 어린, 소년의 모습이 너무나 묻어나는 곤란한 아이였다. 순진무구한 모습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됐다. 모순적이게도 센도는 평생 루카와가 그 모습이길 바랐던 때가 있었다. 하얀 눈이 폴폴 쏟아지는 코 시린 겨울. 소년은 자신보다 고작 한 살 차이 나는 이 소년이 겨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보온병의 물을 마시면서 센도는 루카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곁에 있음에도 떠올린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알았지만, 소년은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야 소년은 까맣고 하얀 소년의 생각을 덜 할 수 있을 테니까.
ㅤ“헤이, 집중해.”
ㅤ그 말을 끝으로 림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센도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루카와는 알아채고 말았다. 일기장을 들킨 아이처럼 센도는 미간을 좁혔다.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먼저 할 수밖에 없었다. 집중할 수 없었으니까. 간질간질한 마음을 곁에 있는 것만으로 건드리는 소년의 존재가 센도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견디기 힘들었다. 통통, 심장 소리가 농구공 튕기는 소리와 닮아 헐떡이는 숨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어느새 소년은 멀리 가버리고, 눈발이 날리는 농구코트에는 소년만이 남았다. 센도는 루카와가 가버린 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어둑해지는 오후 5시, 검어진 길거리를 밝히는 눈송이. 마냥 춥지만은 않았었던 겨울이 유독 시린 건 떠난 뒷모습이 영원히 기억에 남아서 그런 걸까, 잊을 수 없게 된 추억이라 그런 걸까. 입을 다물고 더운 숨을 쉰 센도는 코끝이 시려 킁, 소리 내며 훌쩍였다. 성년을 코 앞에 둔 덜 자란 소년에게도 사랑이란 마음이 따뜻하게 자리 잡았던 시절이었다.
ㅤ센도는 겨울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본가에 다녀왔다. 카나카와에서 본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문제라면 소년이 끝없이 떠오르는 게 문제였다. 달리는 기차 속에서 창 너머 하얗게 쌓인 눈들을 바라보며 센도는 루카와를 떠올렸다. 언젠가의 한여름,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비치던 뜨거운 계절에 센도는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이름에 관해 물었다. 타인에겐 적당한 관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오던 센도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다, 고의에 의한 의도적인 질문이었다. 누군가를 관심 있게 궁금해진 건 오랜만인 센도의 첫 질문이었다. 루카와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마시던 물병의 입구를 매만졌다.
ㅤ“엄마가 꿈을 꿨대. 눈앞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새빨간 단풍이 가득 있던 나무라 넋이 빠진 사람처럼 본 엄마가 물소리에 그제야 고갤 돌려 주변 풍경을 바라봤는데. 단풍나무가 가을에 핀 것이 아니라 겨울에 핀 것이란 걸 깨달았대, 옆으론 작은 시냇가가 있었고. 그때 단풍잎 하나가 팔랑이며 시냇물 위에 얹어져 흘러가는 걸 봤는데, 그걸 무심코 엄마가 건져 올린 거야. 그제야 단풍들이 눈송이랑 함께 휘날리는 예쁜 꿈을 꾸고, 엄마가 건져 올린 단풍은 엄마 뱃속으로 들어갔대. 이게 내 태몽이야. 그래서 태명도 카에데야. 낳고 보니 새까만 고양이 같이 귀여운 아기가 태어나서 여자인 줄 알았다나..”
ㅤ소년은 루카와의 태몽을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의 태몽은 하루가 멀다 본가에 가기만 하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지만 명확하게 기억한 적은 없다. 그래서 센도는 신기했다. 루카와의 태몽을 잊을 수 없어서. 루카와의 태몽은 고양이일 줄 알았다. 새까만 고양이, 노랗게 반짝이는 눈,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짓이 꼭 고양이와 닮지 않았나. 그런데 시냇물에 흘러가던 단풍이라니, 그마저도 루카와와 닮아서 썩 기분이 좋았다. 팔랑거리는 단풍은 우아하고 고아한 고양이의 몸짓과 닮았으니까. 그래서 더 잊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카나카와에 농구코트를 혼자 사용하는 소년의 루카와 카에데라는 이름을.
ㅤ센도는 집에 오자마자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딱히 그들이 반갑거나 하지 않았다. 예의상 반기고, 인사를 나누는 친인척들. 센도는 벌써 카나카와에 있는 바다가 떠올랐다. 소년의 거대한 꿈과 닮은 바다. 카나카와에 있는 바다는 잔잔하면서도 거친 게 소년의 성격을 쏙 닮았었다. 루카와가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바다가 낳은 신적인 존재라고 착각할 정도로 루카와는 바다와 닮았고, 파도와 닮았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해는 눈동자를 떠올리게 했고, 팔랑거리며 넘실거리는 파도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떠오르게 했다. 부서지는 파도의 거품들은 소년이 노력하며 흘린 땀 같아서 센도는 이것이 무척이나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창에서 눈을 돌려야 했다. 더 이상 소년의 생각을 하기엔 마중 올 부모님께 어떤 인사말과 어떻게 지내왔는지, 말하기도 정리하기에도 바쁠 테니까.
ㅤ가족들은 다 같이 모이면 항상 가는 온천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센도는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녹이고 잇노라면 잔걱정과 생가들이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눈앞의 새빨간 단풍을 보자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소년의 이름을 센도는 차마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저것이 소년이 아니었음에도, 센도는 멍청하게 단풍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소년을 떠올리며 센도는 어느새 단풍나무의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나무를 올려다봤다. 소복하게 쌓인 눈송이들. 이내 팔랑거리며 센도의 가슴 앞으로 떨어진 이 작은 단풍잎이 잔잔한 물결에 파동을 일으킨 것처럼 가슴을 찰랑이게 했다.
ㅤ1월 1일에 태어난 소년. 농구계의 슈퍼 루키. 만물의 사랑을 받는 착각을 들게 만드는 소년의 존재는 센도마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물속에서 손바닥을 펴고 단풍을 쥐었다. 커다란 손에 잡혀, 가라앉는 단풍을 보자니 센도의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꾹 다문 채, 시린 코끝을 무시하며 손바닥을 펴 단풍을 보내줬다. 가라앉은 단풍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센도는 그만 눈을 다시 감고 천천히 물속으로 침수했다. 턱 끝까지 닿은 온천물이 가득 쌓인 눈이라고 생각하며 고스란히 감은 눈꺼풀을 꾹 닫고 머리끝까지 온천물에 잠기게 했다. 그제야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건, 소년이 소년을 사랑해서일까, 소년이 소년을 잊지 못해서인가. 누구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ㅤ눈을 뜨니 가라앉은 단풍은 물속을 유영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온천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싶지 않았다. 분명 추울 것이다. 코끝을 얼게 할 정도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투박하고 두터운 손가락 끝을 붉게 만들 겨울과 가라앉은 단풍잎 탓을 하며 괜한 고집을 피웠지만, 아쉽게도 인간은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아가미가 없어 작은 물소리와 떠올려지는 센도의 머리와 몸은 시린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고갤 돌리니 단풍나무가 아름답게 있었다. 겨울에 만개한 단풍나무는 아름다우면서 처량해 보였고, 그 때문에 더 시선을 끌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열렬한 정열을 가진 소년처럼.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ㅤ“루카와..”
ㅤ그 말을 입에서 뱉은 센도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영원히 이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리. 센도가 온천에서 나간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단정하게 갈아입은 센도는 가족들과 단란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같이 들어갔던 친인척의 말을 엿듣자, 하니 여탕 쪽에서도 한겨울인데 단풍나무가 멋들어지게 피었다며 수다를 떠는 걸 들었다. 모두가 그 나무를 좋아한다. 볼 거라곤 붉어진 이파리밖에 없는 나무인데, 모두가 사랑하고, 예쁘다며 떠들었다. 덕분에 소년의 생각을 정리한 줄 알던 센도의 머릿속은 다시 난장판이 됐다. 떠나가지 않는 소년, 일상에서도 들을 수 있는 소년의 이름.
ㅤ모두가 쉽게 부르는 소년의 이름을 오직 센도만이 쉽사리 입에 올리지 못했다. 단풍나무를 말할 때도, 센도는 단풍이라고 말하지 않고, 나무가 예쁘다고만 말한다. 그것이 어린 소년의 첫사랑을 떠나보낼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이 착각한 건, 첫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잊히지 않고 평생의 흉터처럼 남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센도가 사랑한 소년의 생일은 1월 1일이었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의 치기로 쉽게 잊힐 수 있었다면 소년은 아무렇지 않게 첫사랑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을 거다.
ㅤ소년의 생일은 1월 1일이었다. 새해의 시작과 지내왔던 올해의 끝을 알리는 날짜. 365일, 1년이라는 긴 시간 속 유일한 해의 첫날, 1월 1일. 센도는 소년의 생일을 잊을 수 없었고, 소년의 생일을 떠올릴 때면 소년의 태몽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한겨울 눈발이 휘날리는 풍경 속 만개한 단풍나무, 이파리 하나가 시냇물로 떨어지니 이내 하얀 풍경 속 휘날리는 붉은 단풍잎. 얼마나 아름답고 마음을 울리는지, 센도는 이를 악물고 소년의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다. 소년이, 루카와가 이곳에 있었더라면 함께 새해를 축복하며 서로를 위한 소원을 빌었을 텐데. 센도의 자취방엔 단 한 명의 소년만이 있었다.
ㅤ센도는 소년을 끝없이 떠올렸다.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축복하는 밖의 소음 속에 서로가 함께 있는 소년과 센도. 새까만 고양이를 닮은 소년이 끝 없이 머릿속에서 떠올라서 가로등 빛과 요란한 소리가 오는 창문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커튼을 쳤다. 성인도 안 된 소년의 작은 저항이었다.
ㅤ소년의 태몽은 단풍나무였다. 한겨울에 눈발이 흩날리는 그 속에서 만개한 단풍이 살랑이며, 단풍잎 하나가 시냇물에 떨어진 아주 몽환적이고 신선이 나올법한 꿈. 그 꿈을 가진 소년은 1월 1일, 소년은 그 사실을 되뇌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왜 소년의 생일은 1월 1일인가. 왜 소년은 11번의 등번호를 가지고 자신의 앞에서 1살 어린 모습으로, 첫사랑이 됐는가. 센도는 어두운 공간에서 마른세수하고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등번호 4번이 적힌 푸르고 흰 경기복. 착잡했다. 용기 있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스스로 자책하며 뜨거운 숨과 붉어진 눈가를 식혔다. 닿지 않을 소년이 떠오르는 붉은 단풍잎을 꽉 쥐고서.
ㅤ그리고 소년은 성인이 된 이후, 다시는 카나카와에 오지 않았다. 첫사랑의 추억을 단풍나무 아래 묻어버린 소년은 소중히 손에 쥐고 있던 단풍잎 하나만 남기고 카나카와를 떠났다. 그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때의 철 없고, 어리숙했던 소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ㅤ대학에 다니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여자친구도 사귀어 봤지만, 소년은 항상 1월 1일이면 홀로 어둡고 푸른 공간에 스스로 가뒀다. 잊히지 않는 지독한 첫사랑의 추억. 버석하게 마른 단풍잎은 여전히 센도가 책상에 올려둔 액자에 존재했다. 소년은 성년이 된 이래 카나카와에 가지 않았으며, 바다에도 가지 않았다. 어김없이 떠올려질 첫사랑의 어린 소년이 눈앞에 보일까, 목구멍을 먹먹하게 만드는 생각을 떨쳐내려 책을 펼치고 공부했다. 그럴수록 떠올려지는 소년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나부낀 머리카락에 큰 숨을 들이켜며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내 밝아지는 창에 고갤 살짝 돌리니, 함박눈이 쏟아져 내린다.
ㅤ소년은 2년 만에 방에서 나와 스스로 카나카와에 갔다. 소년을 잊기 위해서. 조용히 바닥을 바라보며 걷던 소년은 림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고갤 돌려 농구코트를 바라봤다. 그곳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법한 소년들끼리 뛰어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붉어지는 눈시울에 고개를 푹 숙이고 무작정 걸어야 했다. 흩날리는 눈발, 금방 쌓이는 거 같은 이 눈들이 자신도 함께 묻어버렸으면 해서 더 고개를 숙이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주먹을 꽉 쥐고 걷던 소년은 한겨울, 칼바람과 함께 요동치는 파도의 소리에 얼굴을 구기며 바다를 바라봤다. 하얀 눈과 검은 바다는 안 어울리다 생각했는데,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음이 아프고, 비수에 찔린 듯 목구멍이 턱 막혀서 센도는 바다를 바라보다 그만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소년이, 홀로 조용히 사랑을 하던 센도는 검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농구하던 소년이 잊히지 않는다.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눈보라와 비바람이 불던 날에도 자신을 찾으며 함께 농구하자던 소년의 이름을, 모습을 잊을 수 없어서 새까만 바다를 바라보며 울고, 소리를 질렀다. 바다는 철썩거리는 소리만 낼 뿐, 무엇도 물어보지도, 답을 해주지도 하물며 달래주지도 않았다.
ㅤ“…, 센도.”
ㅤ누군가가 심장을 쥐고 있다면 분명 이런 심정이리라 생각했다. 덜컥거리며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이 소리를 친다. 너의 첫사랑이 돌아왔노라고.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고, 다시 이름이 불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센도는 빨개지지 않은 곳이 없는 얼굴을 들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더 크게 울어버렸다. 아예 주저앉다 못해 엎드려 울자, 환영 같던 첫사랑의 소년은 조용히 모래알을 밟는 소리와 함께 곁에 앉아 센도를 안아주었다. 부드럽게 안기는 센도는 소년이 파도를 맞고 있다는 걸 잊은 채, 소년을 꽉 끌어안으며 통곡했다. 어떻게 소년을 잊겠어, 어떻게 너를 지울 수 있겠어, 어떻게 내가 널 잃을 수 있겠어. 겨울에 피어난 단풍의 소년을 센도 아키라는 잊을 수 없었다. 1월 1일, 새해에 태어나 만인의 축복과 함께 세상을 맞이한 소년의 이름을 잊을 수 없다.
ㅤ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진정된 센도는 조용히 소년의 품에서 나와 제대로 얼굴을 마주했다. 여전한 얼굴, 조금 긴 머리카락. 더 투박해진 손바닥. 추위 타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센도는 소년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고개를 숙이고 소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댈 수밖에 없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깊은 바닷소리까지. 전부 센도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 울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소년과 비교하면 센도는 바뀐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ㅤ센도 아키라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됐다. 어엿한 청년이었으며 성인이 됐고,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센도는 더 이상 농구공을 잡고 있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훈련에 가지 않아도 되고, 8시 반까지 등교하는 날이 줄었다. 1교시 수업은 1시간이 아닌 기본 2시간, 중요한 강의라면 4시간도 했다. 하교 이후에도 센도는 농구 연습을 하지 않는다. 농구공을 잡을 일이 없는 경영학과로 갔기에 딱딱하게 자리 잡았던 굳은살조차 물렁하게 변해갔다. 앳됐던 얼굴은 젖살이 빠지면서 각진 얼굴이 됐고, 콧날은 더 진하게 됐다. 하지만 소년의 모습은 단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젖살이 빠지지 않아 동그란 앳된 얼굴. 살짝 올라와 있는 버선코. 날카로운 무쌍의 큰 눈. 절대 잊히지 않을 새까만 눈동자와 민들레 홀씨 같은 머리카락까지. 센도는 코 먹는 소리를 내며 소년의 손을 꼭 잡아 만지작거렸다. 그 사이 손에 굳은살이 더 생긴 것만 제외하면 이상하게도 소년은 어느 곳도 변한 곳이 없었다.
ㅤ“왜, …왜 여기 왔어.”
ㅤ“집에 없길래, 여기 있을 거라 짐작했어.”
ㅤ“그게 아니잖아, 왜 여기 있냐고.”
ㅤ“새해라서. 가족들 보려고, 왔어.”
ㅤ“봤어…?”
ㅤ“아니. 아직….”
ㅤ센도는 가뜩이나 따끔거리는 눈가가 뜨거워져서 더운 숨을 뱉고, 차디찬 겨울 공기를 삼켜야 했다. 잡고 있던 루카와의 손을 놓고 센도는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것을 닦아내며, 얼어버린 것 같은 차가운 손으로 눈가를 식혔다. 늘 이런 식이다. 찾아오는 것도 제멋대로였고 가버리는 것조차 미련 없이 가버린다. 그래서 소년을 더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원망하고, 슬퍼하며, 그리워하는 시간이 길어진 건 분명 소년 때문이리라. 미련하나 없이 훌쩍 떠나버린 빈자리를 센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려 했지만, 애초에 그럴 수 없던 것이다. 소년, 루카와의 자리는 없어지면 안 되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 자리를 대체할 수도 없었다. 오만하고 철없던 시절의 자만은 성년을 넘긴 2년 뒤에야 그것이 자만이었다는 걸 알았다.
ㅤ아름답게 빛나던 푸른 바닷가는 저 몇백 미터의 심해처럼 새까맸고 감히 잴 수 없이 까마득해 보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거라곤 루카와에게 닿는 파도가 부서졌던 센도의 마음처럼 너무나 잘게 부서지면서 철썩이는 소리와 함께 다시 바다가 데려간다는 것뿐. 바다와 파도, 파도 거품마저 센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것이든 전부 부질없고 센도에겐 필요 없는 것들밖에 없었으니까. 오직 눈앞의 소년만이 센도가 필요한 것이었고, 공허와 공백을 메꿀 수 있는 유일한 바다였다.
ㅤ추위에 피부가 얼어 새빨개진 손으로 옷자락에 주름이 갈 정도로 꽉 잡았다. 다시는 놓치기 싫어서. 더운 숨을 진정시키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성년의 탈을 쓴 어린 소년이 첫사랑의 옷깃을 꼭 잡고 애처롭게 매달려 훌쩍인다. 첫사랑은 어린 소년의 등을 토닥이더니 그대로 허리를 숙여 품에 가득 어린 소년을 안아줬다. 이 온기가 그리웠다는 걸 깨달아서 소년은 눈을 감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바다와 바람이 몰고 오는 찬 공기에 코를 훌쩍이며 몸을 떨고 있을 뿐. 매서운 추위에 센도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전부 꿈일까 봐, 하지만 추위에 약한 첫사랑은 얼마 안 가 센도를 안던 팔을 펴고 옷깃을 잡은 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심하게 일어났다. 놀란 얼굴로 다급히 첫사랑의 바짓자락을 잡자, 작게 벌려진 소년의 입술과 다르게 꾹 다문 첫사랑의 작은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ㅤ“추워. 나 파도 때문에 옷도 젖었고, 너의 집에 가도 돼?”
ㅤ“아…, 미안. 응, …응. 와도 돼.”
ㅤ이 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첫사랑은 모르겠지. 지난 2년간 너에게 너무 말하고 싶었다. 우리 집에 왔다가 갈래? 내가 2학년이고, 네가 1학년일 때 함께 놀고 여름을 보냈던 그때처럼 함께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라는 말을 어린 소년은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거친 손. 그것을 바라본 어린 소년 센도는 차가운 코끝에 괜히 코를 훌쩍이며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여전히 바다는 철썩이며 파도 소리를 내고 부서지는 것을 반복하며 파편을 만들어 냈지만, 그것이 더 이상 쓸쓸하다고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맞잡은 손의 온기가 안도를 주었기에 센도는 안심하고 루카와와 함께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바닥만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던 센도의 눈에 그제야 젖은 루카와의 바지와 옷자락이 보였다. 푹 젖은 옷은 모래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올리니 익숙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몽실거리며 나풀거리는 민들레 홀씨를 닮은 사랑스러운 머리카락.
ㅤ“실례합니다.”
ㅤ“아무도 없어.”
ㅤ“기본 예의야.”
ㅤ모래를 건물에 들어오기 전 미리 털어둔 덕에 루카와의 옷자락엔 물에 젖은 흔적만이 남았다. 추운지 몸을 덜덜 떨며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오자 그제야 떨림이 멈추더니 익숙하고, 능숙하게 센도의 옷장으로 가서 아직도 남아있는 제 옷과 속옷, 애용하는 수건까지 챙겨 욕실로 쏙 들어간다. 얼마 안 가 물소리가 들리자 센도는 소년이 정말 본인의 집에서 씻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무심한 듯 능숙하게 구는 소년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건, 울고 싶은 이 심정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이리라.
ㅤ씻고 나온 소년과 화장실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렇게 포근해 보일 일인지는 그날 처음 느낀 생경한 감정. 센도는 소년이 나오자마자 바로 옷가지와 수건을 챙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탈의한 옷을 변기 위에 올려두고 따뜻한 물줄기를 맞았다.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따뜻한 온도. 그것을 소년이 돌아온 뒤에야 제대로 느껴졌다. 구석구석 씻고 나온 센도는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말리고 있는 루카와가 보였다. 센도는 항상 드라이기를 사용했지만, 루카와는 드라이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대충 머리의 물기를 턴 센도가 드라이기를 들고 루카와에게 다가가 콘센트에 플러그를 끼우고 드라이기를 작동시켜 루카와부터 머리카락을 말려줬다.
ㅤ위이잉, 소음이 공간을 덮쳤고 적막이 드라이기 소기로 꽉 채워졌다. 이러고 있으니 한때 농구했던 여름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적어도 센도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소년의 머리카락이 마르자 센도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소년이 제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걸. 급히 드라이기를 끄며 센도는 소년을 바라봤지만,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을 꼭 다물더니 고개를 돌려 분명 아까와 다른 말을 센도에게 건넸다.
ㅤ“대학은 어때?”
ㅤ센도는 기가 찼다. 분명히 소년의 말은 그런 간단한 문장이 아니었다. 뭔가를 진지하게 물어보는 긴 문장의 질문이란 것을 센도는 확신했다. 그를 추궁해야 했지만 왜인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아 달싹이는 입을 꾹 막고 소년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겨주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ㅤ“나쁘지 않아. 공부도 나름 적성에 맞고, 재미있어. 심심하지도 않고, 내…, 세계도 넓어지는 거 같아. 세상이, 넓다는 것도 알게 됐고.”
ㅤ“그래? 그렇군.”
ㅤ센도는 세상과 세계라는 말을 할 때마다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걸 참아내야 했다. 물론 당연하게 센도도 시원스레 말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혹여나 소년이 또 훌쩍 떠날까 무서웠던 센도는 작은 단어조차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다. 195cm가 넘는 거대한 신장을 가진 센도에게 무거울 건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거대한 소년에게 첫사랑 소년이란 아득하게 무서운 심연의 공포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 슬픔으로 끌어당기는 존재. 센도는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내면서 공간을 가득 메운 공백에 조용히 소년에게 물었다.
ㅤ“언제 돌아가?”
ㅤ“내일. 오후에.”
ㅤ“그럼, 언제 돌아와?”
ㅤ“몰라, 꿈을 이루기 전까지는 안 돌아올 수도 있고…. 명절 같은 날에는 돌아올 거야.”
ㅤ소년이 말하는 문장은 중간에서부터 그렇게 선명히 들리지 않았다. 괜히 저리는 거 같은 손을 죔죔 하고, 소년과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들조차 귀담아듣고 있지 않지만 단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소년은 내일 오후에 떠난다는 것을. 또다시 떠난다는 그 소리만이 머릿속을 유영하며 생각을 어지럽게 만들고, 오직 ‘떠난다.’라는 단어만이 떠올랐다. 어느새 언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던 소년의 입에서는 해외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숙사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은 영어가 유창하게 나오지 않는다. 가끔 버벅거리며 어떤 단어가 나와야 하는지 막힌다는 것과 음식이 너무 짜서 가끔 일식과 맨밥이 너무 그리워진다는 것. 같이 사는 사람들은 아는 얼굴인데, 둘이 사소한 것에 투덕거려서 소란스럽다는 둥, 자신이 모르는 소년의 이야기. 울컥, 감정이 차올랐고 목이 토할 것처럼 불편하다.
ㅤ겨울에 눈이 쌓이면 봄이 와서 햇빛에 녹고, 그 위를 꽃잎이 덮어주는 것처럼 계절의 순환과 같이 인간도 똑같다. 이런 사람이 내 인생에서 나타나면, 언젠가 그 사람이 떠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사람으로 다친 상처를 사람으로 치료하는 것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순환과 회전, 그리고 반복. 안타까운 사실은 센도라는 어린 소년은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해, 겨울 속에 정체되어 눈보라를 맞으며 눈 위에 눈이 쌓이고, 싸리 눈이 내린 위에 함박눈이 쌓였다. 그 위에 진눈깨비가 내리고, 얼어붙은 눈 위에 겨울비가 내렸다. 쌓이고 쌓인 것을 녹인 첫사랑의 소년은 불시에 봄날의 꽃처럼 내려앉아 그 자리의 눈을 녹여줬다. 그리고 더 이상 그곳에 눈은 쌓이지 않았다. 한 없이 녹아내려 소년을 구슬프게 만들었다.
ㅤ
ㅤ“언제. …와?”
ㅤ“몰라.”
ㅤ“언제, 언제, 오냐고…."
ㅤ"모른다고."
ㅤ"왜 몰라? 난…."
ㅤ여기서 널 기다리는데? 센도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울먹일 듯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바라본 소년은 달래는 말조차 없이 바라만 보다가 이내, 등을 토닥였다. 그게 더 서러워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네게 지은 죄 때문에 그런 것일까.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외면한 채, 도망친 나에게 벌을 주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은 자신이 겁쟁이라 마음으로부터, 혹시 모를 너의 거절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어떤 타인보다도 잘 알고 있다. 등을 토닥인 손길이 더는 느껴지지 않을 때쯤, 눈물도 함께 그쳐졌다.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방, 질문의 시작을 센도가 했었더라면 이젠 소년이 먼저 센도에게 물었다.
ㅤ
ㅤ"왜 오지 않았어? 그날, 기다렸어. 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탔어. 왜 네가 오지 않았을지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 센도, 왜 그날 나오지 않았어?"
ㅤ센도는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질문이 소년에게서 나오자, 입을 열 수 없었다. 창문 너머로 함박눈이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고, 은은한 TV 소리 하나 나오지 않는 어린 시절의 자취방은 부모님께서 아쉽다며 가끔 여행 오라고 남겨두셨었다. 원망한 적 없는 부모님의 선택에 오늘 처음으로 센도는 그 선택을 후회하고 단호하지 못했던 자신을 미워했다.
ㅤ그날, 소년이 떠나기 2년 전의 겨울 방학 오기 전. 소년은 그때도 함께 농구코트를 뛰어다녔다. 센도는 곧 들어갈 대학교의 수시를 통과해 둔 상태였고, 루카와는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갔을 때. 어느새 소년은 어리숙한 고등학생 1학년에서 3학년이 되었고, 꿈을 이뤘다. 나라 제일의 선수, 성년이 된다면 여러 회사에서 연락이 올 최고의 신입. 어렴풋이 소년은 성년이 되어서도 일본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센도가 대학생 2학년일 때, 소년은 대학 신입생이 되어 함께는 아니어도 대학 생활을 하고, 또 서로 만나고 웃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삶을. 센도는 문득 상상하고 그렸던 것 같다.
ㅤ"나 내일 미국에 갈 거야.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될 거야. 오랜 꿈이었고, 나는 꼭 꿈을 이뤄야 해. 그러니까 내일 바닷가에 와. 해줄 말이 있으니까. 꼭 와, 기다릴 거야."
ㅤ그래서 소년이 하는 말에, 머리에 종이 댕댕. 울리듯.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떠난다는 그 말만이 울렸다. 미국에 간다. 최고의 농구 선수, 꿈, 해줄 말. 알고 있다. 소년은 조던과 같은 세계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길 원했고 오랜 꿈이었으며, 소년 주변의 사람 중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걸 막상 들으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할 말을 들을 자신이 없어지다 못해 두려웠다. 그래서 센도는 다음날 소년이 나오라는 신신당부에도 바닷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소년과 만나 제정신으로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차한 변명이라도 해도 좋다, 비겁한 도망이라고 해도 좋았다. 센도는 소년이 자신에게 할 말을 들을 자신도, 듣고 멀쩡하게 버틸 자신도 없어서 눈물로 날을 지새울 비참함을 버티기 싫었다. 나가지 않은 그날, 오직 낮에만 눈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다는 뉴스가 떴다. 비행기가 뜰 시간인 오후엔 다시 눈발이 약해져 결항은 없었다고 한다.
ㅤ”나간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너는 꿈을 이루러 미국에 갈 거고, 나는 이곳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을 거야. 뭐가 달라져? 네가 안 가? 내가 대학에 가질 않아? 그날 내게 뭘 말할지 예상이 가는데, [떠난다.] 고백하고 [좋아한다.] 말할 거 같은 그 말을 난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그 이후를 버텨야 하는데?! 너와의 헤어짐과 만남의 모든 고백이 내게 상처가 될 거 같았고, 그래서 나가지 않았어! 나는 네 고백에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니까!“
ㅤ눈물을 쏟아내며 열변을 토한 센도의 얼굴엔 아직도 주룩주룩, 닭똥 같은 눈물이 한가득하였다. 헉헉, 거리는 더운 숨소리와 붉어진 눈가.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는 센도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면 꽤 멋있고 가슴 설레는 눈물이라 생각하겠지만, 소년은 센도를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의 고백이 센도를 이렇게 무너트릴 줄 몰랐기에 함부로 입을 열어 대꾸하지 못하고 센도가 진정할 수 있도록 눈물을 닦아주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소년이 또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시발점이 된 것처럼 센도라는 이름의 어린 소년은 눈물을 한 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바닷가에서 소리 내어 울었던 그때처럼 우는 소년을 ‘루카와’는 몸을 일으켜 센도를 품에 꼭 안았다.
ㅤ루카와에게 있어 센도는 항상 어른스러운 소년이었다. 루카와는 똑똑하다. 가끔 잠을 많이 자서 수업을 놓치거나, 자는 걸 깨우면 괴팍한 잠꼬대가 반응한다던가라는 엉뚱한 모습이 있다. 하지만 루카와는 확실히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다. 루카와는 주장으로 활동도 해봤고, 타인을 어떻게 격려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센도가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소년이라면, 청소년이라면 당연히 표출할 것들을 적절히 표출하며 한편으로는 여유로움을 가진 소년이 루카와에겐 어른스러웠다. 선수로서 상대를 만나면 차오르는 투쟁심. 그것을 루카와는 숨기지 않았다. 선수다운 선수를 만나면 타오르는 열정을 숨기는 건 루카와답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소년 또한 그러했다. 열정, 지고 싶지 않아 하는 행동과 말투. 루카와는 소년의 모든 게 마음에 들었었다. 그래서 고백하려 했는데. 상황은 언제나 하나를 쥐여주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라고 한다.
ㅤ그러니까, 소년이 맞았다. 루카와는 그날 바닷가에서 소년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뒤[떠난다.]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소년은 이런 작은 고백 따윈 잊어버릴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유연하게 해결할 줄 알았고, 거대한 태산에 막힌다면 자연스럽게 타고 올라 의연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그랬던 소년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줄 알았더라면 루카와는 소년을 바다로 불러낼 생각도 안 했을 것이고, 소년은 바다에 와달라는 말에 괴롭고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새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루카와는 너무나도 빠르게 이해하고 말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천 번에 가까울 법한 계절을 사무치게 무서운 겨울 속에서 산 소년의 심정이 어떨지 새삼 깨닫고 말았다. 아직도 품에서 울고 있는 소년에게 미안해서 조용히 시린 계절을 녹아줄 말을 골랐다.
ㅤ”태연하게 이겨낼 줄 알았어. 항상 고백받았을 때마다 의연하게 대처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고백해도 괜찮을 줄 알았던 건데, 이렇게 아파할 거였다면 그날 바다로 불러내려 하지 않았을 거야.“
ㅤ소년은 미간을 좁히며 눈시울을 다시 붉혔다. 이런 말이 듣고 싶던 게 아니었다. 소년이 듣고 싶었던 말은 자신을 바다로 불러내지 말걸. 이란 말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자신의 심정과 마음, 하고 싶은 말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년은 차마 좋아하는 첫사랑을 때리지도 못하고, 밉다는 듯 주먹으로 툭툭 밀치지도 않은 채 조용히 꼭 잡으며 훌쩍이는 소리만을 냈다. 눈앞의 첫사랑을 놓치기 싫었고, 단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과가 아니라, 센도는 루카와의 고백을 듣고 싶었다. 너를 좋아한다. 생각보다 많이 사랑한다. 그러니, 자신이 미국에 있게 되겠지만 사귀어 주면 안 돼? 라는 아주 너무나 간단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알법한 고백을 센도는 원했다.
ㅤ”아니야, 아니야. 루카와, 그걸 말해달라는 게 아니야. 나는 아직도 네 고백을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왜 말해주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네가 좋아한다고 고백해 주는걸. 기다린다고….“
ㅤ루카와는 센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루카와는 센도에게 고백할 수 없었다. 상처 입은 2년을 루카와가 보상해 줄 수 없으니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사람뿐이라고 하지만, 그게 자신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어떠한 말소리 없이 센도만 우는 소리만이 들렸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센도는 확신했다. 루카와가 자신에게 고백하지 않으리라는 가설이 확신한 순간, 루카와는 센도와 얼굴을 마주하고 눈물을 닦아줬다.
ㅤ"또 상처받을 거야. 나는 앞으로도 미국에 있는 시간이 많을 거고, 일본에 오는 일은 줄어들겠지. 내 이기심에 네게 상처를 줬어. 어떻게 고백해, 지금도 이렇게 울고 있잖아. 고백하면 물리지 않아. 근데 그러면 너는 슬플 거야. 일본에서 기다릴 테니까. 사회에 나가서 어른이 되어 미국에 온다고 해도, 우리가 만나서 데이트하는 것도 힘들 거야. 일정이 안 맞을 수도 있고, 네가 온 날에 내가 그 지역에 없을 수도 있어. 내가 일본에 널 만나러 와도 그때면 넌 직장을 다닐 거야. 피곤하고, 힘들겠지. 서로의 안부를 편지로 물어가며 지내는 방법도 있지만, 오고 가는 시간도 있고…."
ㅤ"루카와. …, 루카와. 제발….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너 하나야."
ㅤ그제야 루카와도 센도도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했다. 잔뜩 붉어진 눈시울과 눈물을 주룩주룩 떨구고 있는 센도의 슬프고, 애절한 얼굴. 미안함과 걱정으로 가득 차서 미간 사이가 좁혀지고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지 눈에 힘을 주며 입을 꾹 다물어 버린 루카와의 얼굴.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 혹여나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최대한 말을 고르고 아꼈다. 또 상대가 똑같은 상처를 받아서 괴로워할까, 걱정하며 상대가 상처받지 않는 선택지를 돌려 말했다. 분명 이 둘이 원한 것은 서로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물어보고, 가끔은 웃으며 농구도 하며, 별거 아닌 일상을 떠드는 시간을 원했을 거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떠드는 일상.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서로 말을 돌려 말하고, 말을 아꼈는데 결국 얼굴을 마주하니 글러 먹은 선택지였다. 애초에 상처를 주지 않는단 선택은 없었고, 배려라고 생각했던 말과 행동들이 되려 배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했다.
ㅤ[여러분! 행복한 새해 지내고 계실까요? 올해의 마지막 하루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에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많길 바랍니다. 모두 이뤄지길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비시며 이번 해의 마지막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ㅤ[5!]
ㅤ새까만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잊어본 적이 없다. 루카와의 바다를 닮은 꿈이 마르길 단 한 번도 빌어본 적은 없다. 오히려 센도는 루카와가 미국을 꿈꿨을 때, 그 꿈이 꼭 이뤄지라고 빌었다. 소년만큼은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농구하길 바란다고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소년의 옆에 자신이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센도는 소원을 빌었었다.
ㅤ[4!]
ㅤ돌아온 소년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보니, 여전히 자기 손엔 소년의 얼굴이 작았다.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것도 여전했고, 아름답게 나풀거리며 긴 속눈썹도 변한 게 없었다. 살짝 오른 젖살조차 여전히 사랑스럽다면 센도는 이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속으로 생각하며 활짝 웃었다. 루카와가 미국으로 떠난 뒤 처음으로 지어 보이는 가장 센도답고 아름다운 미소. 센도의 생각을 어림짐작하며 루카와는 센도의 웃는 얼굴을 바라봤다. 여전히 자신의 어른스러웠던 소년은 어여쁘다고 생각하며.
ㅤ[3!]
ㅤ루카와는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센도가 아무리 힘들다고 울어도 꿈에 대한 열망은 막을 수 없다. 그가 운다면 아마 옆에서 달래주고, 의견을 들어보며 만나는 정도라던가 것들을 조율하는 정도밖에 못 하겠지. 루카와는 최선을 다해 센도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그게 과연 자신의 마음대로 될지 걱정이었다. 이 걱정도 곧 사라졌다. 센도의 웃는 얼굴을 보니 루카와는 쓸데없는 걱정이라 생각했다.
ㅤ[2!]
ㅤ센도가 사랑한 첫사랑 소년은 앞으로, 미래에도 센도를 울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벽이 있겠지만, 루카와는 최선을 다해서 센도를 아껴주고 사랑할 거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과 확신이 있다. 센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아마 가족 다음으로) 가장 클 거라고.
ㅤ[1,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