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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집에HomeAlone

뤼트

ㅤ그게 서시였는지 달기였는지 혹은 양귀비였는지 거기까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여자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고대 중국의 한 왕에게 너무나 사랑하는 애첩이 있었다. 그 애첩은 천상의 선녀만큼 아름다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웃지 않아서, 왕은 이 여자의 웃는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지만 여자는 웃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비단을 찢는 소리를 듣고 웃었다. 사실은 웃은 것도 아니고 입가를 아주 약간 들썩였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왕은 여자의 그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온 나라의 비단을 모아다가 밤낮으로 찢었다고 한다. 물론 그러다가 나라는 망했고, 이 사달을 초래한 왕의 애첩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마 포사의 이야기였던 듯싶다.

ㅤ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처음 읽고는 이런 미친놈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을 별로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여자가 좋고 여자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도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아니 그리고, 그 여자가 얼마나 예뻤는지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비단 찢는 소리라고 해봤자 결국은 천 찢는 소리에 불과할 테고 그런 소리를 듣고 즐겁다고 웃는 여자라면 그거 요즘 말로 사이코패스라든지 뭐 그 비슷한, 정신 건강을 의심해 봐야 하는 부류 아니냐고. 그런 여자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한다고? 이쯤 되면 여자도 이상하고 그런 여자 한번 웃겨 보겠다고 달려든 왕도 제정신 아닌 거지. 그러니까 나라가 망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뭐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ㅤ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웃는 얼굴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태웅을 만나고 난 후였다.

ㅤ물론 태웅은 포사가 아니었고 비단 찢는 소리 같은 것에 미소를 지을 만큼 뒤틀린 성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은, 익히 알려진 그 평판에 비해서는 소소하게 잘 웃기도 하는 편이었다. 열심히 공을 들이던 길고양이가 처음으로 츄르를 받아먹거나 겨울 들어 처음으로 붕어빵 트럭을 발견했을 때나 연습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던 길 너머로 펼쳐진 바다 위로 지는 노을이 너무나 근사할 때 그는 가끔 아주 엷으나마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리고 그 외의, 미처 생각나지 않는 수많은 순간들에 태웅은 꽤나 잘 웃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언제까지나 공공연하게, 비밀 아닌 비밀로 대협의 마음속에만 간직되어 있었다.

ㅤ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의외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 홀로 집에Home Alone」였다.

ㅤ크리스마스 언저리만 되면 어느 채널에서든 꼭 한 번은 틀어주는 이 영화는, 처음 한두 번은 몹시 재미나게 봤던 기억이 있다. 정말 배가 아파 몸이 일으켜지지 않을 정도로 웃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 언젠가부터 이 영화는 너무나 크게 히트를 치는 바람에 물리도록 들어서 다시는 듣고 싶지 않게 되어버린 흘러간 유행가처럼 이제는 그저 식상하게만 느껴지는 데가 있었다. 웃음은 빨리 색이 바랜다. 게다가 한없이 귀엽던 주인공 소년 역을 맡았던 아역 배우가 실은 불행한 가정사에 마약과 알콜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그야말로 TMI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이제는 지나간 추억의 한 페이지에나 자리하는 ‘흘러간 영화’로 남아버린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적어도 대협에게는 그랬다.

ㅤ그러나 태웅에게 이 옛날 영화는 마치 포사에게 비단 찢는 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ㅤ태웅은 제 편에서 먼저 뭔가를 하자거나 뭔가를 먹자거나 하는 말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뭔가를 하자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서태웅이라는 인간의 역치값을 한참 넘기는 모종의 사건이 벌어졌다는 의미였고, 그래서 대협은 대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말을 들어주곤 했다. 태웅은 가끔 ‘영화 보고 싶다’는 말을 했고, 그가 보고 싶다는 영화가 지금 개봉하는 영화가 아니라 「나 홀로 집에」일 때는 대개 태웅이 뭔가로 몹시 마음이 상해있는 상태라는 의미였다. 처음 태웅이 「나 홀로 집에」를 보자고 말했을 때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래 뭐. 재미있긴 하니까. 잠깐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말이지. 기분이 나쁠 때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은근히 효과가 좋기도 하고. 뭐 그 정도의 의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었다. 태웅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라 할만했다. 그는 두 도둑이 케빈의 집 앞 현관에서 뿌려둔 물이 언 것에 미끄러져 자빠지는 장면에서부터 키득거리기 시작하더니 문에 매달아둔 토치에 도둑의 머리가 홀랑 타버리는 장면에서는 숫제 쓰러져 흐느끼기까지 했다. 그래서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딴사람이 된 듯 웃어대는 태웅을 흘끗거리느라 꽤 오랜만임이었음에도 영화를 전혀 보지 못했다. 그렇게 눈에 눈물이 고일 만큼 웃는 태웅을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ㅤ그렇게 영화가 다 끝난 후 태웅의 얼굴은 웃음의 흔적이 남아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저라서 머쓱했던지 멀뚱하게 저를 바라보는 대협의 목을 끌어안고 짧고 옅은 키스를 해 왔다. 뺨에 닿는 뺨이 유달리 보드랍고 따뜻해서 어쩐지 조금 생경한 기분마저 들었다. 키스는 몇 번을 거듭하는 사이 점점 깊고 질척하게 변해 갔다. 태웅의 종아리가 가만히 제 다리를 감는 것을 핑계로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엉킨 채 쓰러졌다. 미처 끄지도 못한 텔레비전 화면에는 영화가 다 끝난 후에 띄워지는 배급사의 로고만 커다랗게 띄워져 있었지만 그걸 꺼야겠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다만 그날 태웅의 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웠고 따뜻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ㅤ이상하지, 하고 태웅은 그 모든 행위가 다 끝나고 난 후에야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저 영화 좀 이상해. 지금까지 스무 번도 넘게 본 거 같은데 볼 때마다 웃어. 똑같은 부분에서 웃어. 이젠 대사도 다 외우는데. 이 담에 뭐가 나올지 다 아는데도 웃어. 좀 간지럼 타는 거랑 비슷한 거 같아. 그 말에 슬그머니 손을 뻗어 허리 뒤쪽 부분을 간지럽혔다. 움찔 웅크리는 어깨 위로 좁쌀 같은 소름이 돋아올랐다. 사람마다 간지럼을 타는 정도는 다르고 태웅은 간지럼을 거의 타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태웅은 의외로 몹시 간지럼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다만 감히 그를 간지럽히려 드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간지럽히는 손과 밀어내는 손이 뒤엉켜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ㅤ거기 가보고 싶어, 라고 태웅은 말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록펠러 센터에.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곳에. 선물도 무엇도 필요 없고 가족을, 엄마를 돌려달라고 소년이 소원을 빌고, 그 소원에 응답하듯 엄마를 다시 만난 그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곳에. 그래서 가자, 하고 대답했다.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고. 크리스마스까진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뭐, 가면 되지.

ㅤ그랬다. 가면 됐다. 비행기를 타면 직항이면 14시간, 조금 넉넉히 잡아도 16시간이면 충분하다. 어디 외따로 떨어진 오지 같은 곳에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머나먼 우주 같은 곳으로 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the city’라는 단어 자체를 별명으로 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뉴욕’에 가려는 것이다. 그런 거라면야 방법은 너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비행기가 아니라면, 그리고 일정을 조금 넉넉하게 잡는다면 일본으로 가서 크루즈를 타는 방법도 있다. 다소 일정이 길어지긴 하겠지만 뻔하지 않은 여행이라면 오히려 그쪽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ㅤ그러고 보니 그랬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뒤는 태웅의 생일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좀 버라이어티해지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생일 일주일 전에 뉴욕까지나 가서 크리스마스트리만 덜렁 보고 돌아오다니,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목표’가 아니라 ‘시작점’이어야 했다. 생각은 순식간에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뉴욕 하면 역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지. 지금은 뉴욕에서 제일 높은 빌딩도 아니고 일곱 번째인지 여덟 번째인지 그렇다지만 뉴욕에 가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지 않고 돌아오는 건 뭐랄까,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보지 않고 오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진다고나 할까. 에프에이오 슈워츠FAO Schwarz도 갈까. 거기 「나 홀로 집에」에도 나오니까 가면 좋아하지 않을까. 아니, 아니다. 누가 뭐래도 뉴욕 하면 실은 록펠러 센터보다도 12월 31일 밤의 타임스퀘어가 아닐지. 그곳에서 맞는 새해 첫날 겸 태웅의 생일이라. 타임스퀘어의 볼 드랍Ball Drop을 보고, 터지는 폭죽 속에서 해피 뉴이어 키스까지 하면 그야말로 멋진 생일 선물이 아닐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오가는 시간까지 모두 합쳐서 열흘 정도는 시간을 비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전까지 그만큼 열심히 살면, 연말에 열흘 정도 시간 빼는 것 정도야 못 하겠냐고.

ㅤ그렇게만 생각했다. 가면 되지 뭐가 문제겠냐고.

결국은 남의 생일일 뿐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ㅤ​그냥 하나의 ‘핑계’가 필요할 뿐인 거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기분. 며칠 있으면 또 해가 바뀌고, 한 해 동안 또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지 않으면 안 되고. 이를테면 뮤지컬의 인터미션 같은 이 공백을 실컷 즐길 핑계가 필요한 거겠지. 이런 거 보면 예수는 정말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하나님의 아들인 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팍팍하고 재미없는 세상을 허덕이며 사는 중생들―아, 이 용어는 불교 쪽이던가―에게 자신의 생일까지 동원해서 이런 훌륭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다니 말이다.

ㅤ“세상에, 안 주무세요? 거긴 지금 새벽 두 시쯤 되지 않았어요?”

ㅤ대협은 그 유명한 월스트리트 가의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크림치즈를 잔뜩 바른 베이글을 곁들인 커피 한 잔을 홀짝대는 중이었다. 이걸로 점심을 때우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한가롭게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점심을 먹을 시간이 나지 않아 도리 없었다. 조금 무리를 하면 어떻게든 요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충 허기나 면하고, 대신 저녁이나 좀 그럴듯하게 먹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고 근처 카페에 들러 막 자리를 잡고 앉은 참이었다. 슬슬 뉴욕에 있는 본사 발령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참이었다. 다소 갑작스레 결정된 이번 출장은, 사실 그 연장선인 듯한 느낌이 없지 않기도 했다.

ㅤ황소는 주식시장에서 상승장을 뜻하는 동물이라 어느 나라건 증권거래소 앞에는 황소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는 경우가 많긴 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걸로 유명한 미국인들이 대공황의 신호탄을 터트린 블랙 먼데이 같은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염원하면서 증권거래소 앞에 황소 동상을 세웠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조금 기묘하게 느껴지는 데가 있었다. 이 황소상의 뿔이나 고환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은 꽤나 여기저기 퍼져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대개 뿔을 잡거나 손을 댄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개중 짓궂은 몇몇 사람―주로 남자들―이 굳이 황소상의 뒤로 돌아가 뒷다리 사이에 팔을 쑤셔 넣은 채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일 년에 몇 번이나 이곳을 들락거리면서도 저 황소상 앞에서 사진을 찍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고 대협은 생각했다.

ㅤ“얘기는 대충 마쳤어요. 오늘 오후 빡세게 돌고 나면 미팅도 다 끝나고요. 어차피 25일은 여기도 휴장일이잖아요.”

ㅤ이틀 뒤면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말은 산타 랠리Santa Claus rally가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시기에 각종 상여금과 인센티브, 보너스 등이 지급된다. 사람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씀씀이는 풍족해진다. 그 과정에서 소비가 늘어나고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증시는 상승세를 타게 된다. 지금은 그런 시기였다.

ㅤ“12월 말은 미국 증시에서 연중 두 번째로 강세를 보이는 시기잖아요. 언젠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S&P500 지수가 83%인지 오른 12월도 있었다구요. 누구였더라, 아무튼 대선 있었던 해였던 거 같은데.”

ㅤ점심은 어차피 못 먹는 것으로 작정한 터이니 베이글을 하나 더 먹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베이글 말고 비엘티 샌드위치 같은 걸 먹을까. 확실히 미국에서 먹는 음식들에는 채소가 별로 들어있지 않긴 했다. 야채를 썩 좋아하는 입맛이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오면 귀신같이 오이나 당근, 양배추 같은 채소가 먹고 싶어지는 건 좀 신기한 일이긴 했다.

ㅤ“연준Fed에 달렸죠. 기자회견이나 경제 전망 업데이트에서 부정적인 발표가 없어야 산타 랠리고 뭐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25bp 정도면 세이프일 텐데.”

ㅤ태웅은 오이를 싫어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실을 태웅의 입에서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서태웅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오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대협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샌드위치나 햄버거에 생 오이나 오이피클이 섞여 있으면 그 섬려한 눈썹이 아주 조금 찡그려지는 기색을, 뭔가를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 것을 눈치챘으리라고는 설마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ㅤ“조금 더 돌아가는 걸 지켜보죠. 연준과 싸우지 마라Don't fight the Fed는 말도 있잖아요. 하긴 뭐 그것도 옛날 말이고 요즘 사람들은 연준이 뭐라고 떠들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지만 그러다 벼락 맞아도 아무도 책임 같은 거 안 지니까.”

ㅤ늘 이런 식이다. 서태웅의 기억은, 늘 이런 식으로 기억 어딘가에 묻어 있다가 한 가닥씩 흘러나온다. 옷깃에 달라붙은 고양이의 털처럼.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때 이후 태웅의 모습은 텔레비전에서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해,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태평한 생각을 하던 그해 겨울, 아니 가을에서 겨울로 막 접어들 그 무렵이었다.

ㅤ대학 농구 시즌이 막바지에 달해가던 중이었다. 순위 다툼은 치열해졌고 리그는 점점 더 열기를 띠어가고 있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느냐 마느냐를 가리던 꽤 중요한 경기였다. 슛을 던지고 착지하던 순간 수비수에게 떠밀려 넘어지면서 발목이 돌아갔다. 참을 만하기에 그냥 뛰었다. 그 결과로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다. 생전 가야 그런 말을 하지 않던 태웅은 그날 처음으로 왜 답지 않은 짓을 하냐며 화를 냈다. 너는 똑똑하잖아. 너는 영리하잖아. 앞뒤 안 가리고 하나만 보고 달려드는 짓 같은 거 너는 안 하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그러게, 왜 그랬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조바심에 등을 떠밀리고 있었다. 부상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두 달 이상의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해의 크리스마스는 뉴욕 록펠러 센터는 고사하고 병원의 재활센터에서 보내야 했다.

ㅤ다친 발목이 거의 나아갈 무렵이었다. 늦은 시간 아버지가 불쑥 방으로 찾아왔다. 대협의 기억으로는 연고지를 떠나 능남고에 진학해 집을 떠난 이후로는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아버지는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그거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이냐고. 하마터면 뭘요, 라고 물어볼 뻔했다. 지금이야 젊은 혈기에 뛰고 구르고 땀 흘리는 게 좋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언제까지나 20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슬슬 ‘그다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 말이 조금이라도 윽박지르는 투였거나 꾸짖는 투였다면 오히려 제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투 속에 서린 것은 차마 곡해할 수도 없이 순전한 걱정과 근심이었다. 하필이면 부상의 끝 무렵 들어버린 그 말은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대협의 마음속에 녹지 않은 설탕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ㅤ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부상은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그러나 생각은 점점 많아져 갔다. 코트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5년 내외였다. 그만큼만 살고 죽어버릴 것이 아니라면 그 후로 남아 있는 더 긴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코트에서의 시간이 끝난다고 농구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코치로, 감독으로, 혹은 구단의 프런트로 여전히 농구 속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을 대협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게 그것인지, 그 점은 그에게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수학 명제처럼 남아 있었다.

ㅤ그의 그런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태웅이었다. 너 요즘 좀 이상해. 도무지 말 돌리는 법이라고는 모르는 그는, 어느 날 불쑥 그렇게 말했다. 농구하는 게 즐거워 보이지 않아. 하기 싫은 숙제 같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처럼, 그런 플레이를 하고 있어. 그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서 한참을 고개만 주억거리다가 그냥 요즘 좀 머리가 복잡하다고, 그렇게만 말했다. 태웅은 그 말에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의외의 부분에서 의외로 눈치가 빠른 그는 그쯤에서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농구를 그만두리라는 것을.

ㅤ결국 졸업 시즌에 대협은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혹시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니냐는 확인 전화가 셀 수도 없이 걸려 왔다. 그 모든 연락들에 일일이, 제 농구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는 대답을 다 해주고 나서야 태웅이 왔다. 그는 대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만두는 거냐고도, 왜 그만두는 거냐고도 그는 그 어떤 말도 물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의외의 부분에서 의외로 눈치가 빠른 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농구를 그만두리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태웅은 대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짧고 간단하게 한 마디를 남겼을 뿐이었다. 너 비겁해. 그 말이 다였다. 그는 그 말을 부연하지 않았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래서 오히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그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한다는 것을. 농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그들이 나누어 가진 하나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이제 자신은 서태웅에게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ㅤ그날 이후 대협은 한 번도 태웅을 마주치지 못했다. 계속 코트에 남은 태웅과 코트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자신의 생활반경이 달라졌다는 것이 물론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런 것을 다 감안하더라도 두 사람은 마치 서로의 세계에서 지워져 버린 듯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술에 취해 전화를 하거나 상대의 SNS에 실수로 흔적을 남긴다거나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사이를 눈치채고 있던 지인들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고 두 사람이 ‘그런 사이’인 줄을 몰랐던 사람들은 이제는 정말로 타인이 되어버린 서로의 이야기를 굳이 물어 나르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별은 퍽 밋밋하고 슴슴하게 찾아왔다. 거기에는 눈물을 짜는 신파도 없었고 붙잡고 매달리는 구질구질함도 없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끝나버렸다는 사실만을 뼈저리게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ㅤ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해, 발목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로라도 록펠러 센터에 갔어야 했다고.

ㅤ그날의 미팅은 다섯 시가 조금 지나 모두 끝났다.

ㅤ배가 고팠다. 역시나, 베이글 두어 개와 커피 한 잔으로 때우기에는 오후에 줄줄이 잡힌 미팅이 너무 길고 힘들었다. 아마 미팅 내내 사용된 언어가 영어여서, 늘 내뱉던 자신의 말이 아니어서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머리를 한 번 굴려야 하는 그 연산 과정이 꽤 피곤했던 게 틀림없다고 대협은 생각했다. 네 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노골적으로 두통이 와서 몇 번 얼굴을 찡그렸고,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상대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저어 보여야 하기도 했다. 어차피 회의 내용은 죄다 녹음해 두었으니 이따가 귀국하는 비행기 편에 한 번 들어보고 찬찬히 정리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돌아가는 길은 열네 시간이나 걸린다.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도 일곱 시간 이상이 남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 할 소일거리가 생겨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ㅤ그랬다. 가면 됐다. 비행기를 타면 직항이면 14시간, 조금 넉넉히 잡아도 16시간이면 충분하다. 어디 외따로 떨어진 오지도 아니고 머나먼 우주 같은 곳도 아니다. ‘the city’라는 단어 자체를 별명으로 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뉴욕’이다. 그런 거라면야 방법은 너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비행기가 아니라면, 그리고 일정을 조금 넉넉하게 잡는다면 일본으로 가서 크루즈를 타는 방법도 있다. 있었다. 그 후로 몇 번이나 뉴욕에 왔지만 대협은 단 한 번도 록펠러 센터에 가본 적이 없었다. 가려면 그때 갔어야 했다는 듯이. 그래서, 그 타이밍을 놓쳐버린 너는 아마 다시는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건 보지 못할 거라는 듯이.

ㅤ갑자기 불쑥,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ㅤ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쪽 시간은 이제 겨우 아침 일곱 시를 조금 지난 정도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미 일어나고도 남았을 시간이긴 하다. 명색 이런 일을 하면서 장이 열리는 날 아침 일곱 시도 넘어서까지 침대에서 꾸물거리는 인간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러나 아직 출근 시간도 되기 전인데 이런 말부터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회사에서 기다리는 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보고서일 터이므로, 일단 텅 비어버린 위장부터 좀 채운 후에 숙소로 돌아가 숙박을 연장하고, 보고서부터 써야겠다고 대협은 생각했다.

[윤대협입니다. 미팅은 잘 마쳤고요. 저 볼일이 좀 있어서 26일 비행기 탈게요.]

ㅤ미국 증시가 쉬는 날은 크리스마스 당일 뿐이다. 26일에는 또 26일의 장이 열릴 것이고 그 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만은, 그런 것들은 좀 접어놓고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가고 싶었다.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ㅤ그래서 대협은 시간을 저녁 7시―그쪽의 시간으로는 오전 9시―로 맞춘 예약문자 한 통을, 대표 앞으로 보내 두었다.

ㅤ크리스마스이브인 다음날은 꽤나 늦은 시간까지 객실에서 빈둥거렸다. 아침에 일어나 체크해야 할 것들만을 간단히 체크하고, 아침도 굳이 나가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룸서비스로 주문했다. 회사 법인 카드를 들고 온 출장에서 이래서 될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두 번은 없는 일일 터이니 크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는 넷플릭스 계정을 연결해 「나 홀로 집에」를 봤다.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조금 자존심 상하게도 몇몇 부분에서는 그만 실없이 웃고 말았다. 특히 문에 매달아둔 토치에 도둑의 머리가 홀랑 타버리는 장면에서는 그만 풉 소리를 내고 한참을 키득거리고 말았다. 뻔히 다 아는 내용인데도.

ㅤ묵고 있는 호텔에서 록펠러 센터까지는, 걸어가자면 걸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목적지를 듣자마자 대뜸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가는 거냐고 물었다.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맘때에 미국에 오게 되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으니까요. 아 그럼요! 기사는 대번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뉴욕에 왔으면서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지 않고 돌아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그는 한참이나 이런저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아마 탑승 거리가 길었더라면 그 수다 아닌 수다는 훨씬 더 길어졌을 것이다.

ㅤ블루보틀 앞에서 내렸다. 커피라도 한 잔 살까 하다가 돌아가는 길에나 들르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조금만 걸어가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블록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티파니 매장도 있다. 그때 생각했던 크리스마스부터 태웅의 생일까지의 계획 중에는 아마 그 매장에 가서 커플링을 맞추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없었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그 매장을 봤다면 분명히 그 계획은 추가되었을 것이다.

ㅤ일부러 저녁 시간에 맞춰왔지만 일찍 왔더라도 인파에 떠밀려 저녁 시간에나 도착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두운 데서 보는 것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대충만 봐도 20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트리에는 찬란하기까지 한 조명들이 빼곡하게 켜져 있어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팅커벨들이 트리의 잎사귀마다 앉아 요정의 가루를 쉴 새 없이 뿌려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 꼭대기에는 아주 커다란 크리스탈로 만든 별 모양의 장식이 빛나고 있었다. 잠시 어린아이가 된 기분으로, 목이 꺾이도록 고개를 쳐들고 그 별장식을 올려다보았다.

ㅤ「나 홀로 집에」의 다음 이야기쯤 되는 속편에서 소년은 이 트리 앞에서 소원을 빈다. 소원은 그냥 가족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늘 자신을 못살게 굴고 괴롭히던 형까지 포함해서, 모두를. 선물도 필요 없고, 오늘 밤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언제라도.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났을 때, 소년은 거짓말처럼 크리스마스 시즌 인파로 넘쳐나는 공항에서 길이 엇갈려 헤어져 버린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다. 거기까지를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영화가 워낙 웃기고 재미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참으로 크리스마스다운 이야기고 크리스마스다운 신파가 아니던지. 신기한 일이다. 다른 날과 똑같은 365일 중 하루일 뿐인데. 그래봤자 남의 생일일 뿐인데. 이날이 뭐라고, 유독 이날 언저리만 되면 기적 같은 것을 믿고 싶어지는 것인지.

ㅤ“올 한 해는 딱히 운 기억 같은 것도 없고, 그렇게 크게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ㅤ산타 할아버지는 이 다 큰 아이에게도 선물 같은 걸 줄까.

ㅤ제대로 헤어지긴 했던 건지, 뒤늦게 그런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로 결별한 것인지, 혹은 결별에 한없이 가까운 아주 긴 유예의 상태에 있는 것인지. 그런 거라면 적어도 마지막으로 한번이라도 다시 만나서 나의 한없는 비겁과 남루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기를. 한 번만이라도. 몇 분만이라도.

ㅤ멀리서 조금 전 지나간 퍼레이드 행렬의 선두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산타가 흔드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파장이, 한점 승부의 순간 자유투 라인에 서서 바닥에 공을 튕기는 그 순간의 울림처럼 따갑게 귀에 꽂힌다고 생각했다. 하나를 넣으면 동점, 두 개 다 넣으면 승리, 그러나 하나도 넣지 못하면 한 점 차의 패배인 그 순간처럼.

ㅤ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대협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에 눈이 마주쳤다.

ㅤ태웅은 여전히 대협이 떠나온 그 코트에 남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농구를 했다. 서른을 넘어서면서 그의 플레이는 한결 원숙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예전엔 스치기만 해도 손을 베는 예검銳劍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사방에서 날아드는 모든 것을 제 몸으로 막아내는 방패가 되어있었다. 그는 그렇게, 하나의 농구 선수로서, 그 이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아름답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입은 패딩부터 목도리까지 온통 시커먼 색으로 둘러싼 그 모습은 오래전 그때 츄르 하나 먹여보겠다고 무던히도 애를 쓰던 집 근처의 검은 길고양이를 닮아 있어서, 이 오랜만의 재회에 걸맞지 않게도 그만 웃어버릴 뻔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아직도 코트 위에서 그 마지막 1초의 버저비터를 위해 뛰고 있는 태웅은 여전히 눈부셨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마치 다른 세상의 존재인 것처럼. 그래서 밤을 지새운 꽃이 막 피어나는 순간을 목격한 인간처럼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찰나의 공존이 과연 자신에게 허락된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어서, 대협은 순식간에 몇 번이나 깜빡여지는 그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ㅤ“…”

ㅤ네가 올 수 있었다면 나도 올 수 있었을 텐데. 그 끝은 언젠가 왔을 테지만 내 편에서 먼저 타임 오버를 부를 필요는 없었을 텐데. 언젠가 다른 길을 가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일찍 돌아서지는 않아도 되었을 텐데.

ㅤ그제야 직시한 자신의 ‘비겁’은 스산하기까지 했다.

ㅤ“안녕.”

ㅤ제대로 헤어지긴 했던 건지, 뒤늦게 그런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로 결별한 것인지, 혹은 아주 긴 유예의 상태에 있었던 것인지. 그래서 이 머나먼 이국의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서 재회한 지금 이 순간을 과연 무엇으로 불러야 옳은 것인지를.

ㅤ“여기서… 보는구나.”

ㅤ태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ㅤ다만, 그랬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를 알고 지내온 사람의 직관으로, 대협은 지금의 이 재회가 태웅에게도 퍽 당황스러운 종류의 것이며 그것이 불쾌하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모른 척 스쳐 지나가지 않고 어쭙잖은 인사라도 건넬 용기가 났던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ㅤ“뉴욕에 출장이 있어서. 원랜 어제 돌아갔어야 했는데.”​

ㅤ“…”

ㅤ“시기도 시기고. 옛날 생각도 좀 나고 해서.”

ㅤ그랬다. 가면 됐다. 비행기를 타면 직항이면 14시간, 조금 넉넉히 잡아도 16시간이면 충분했다. 어디 외따로 떨어진 오지도 아니고 머나먼 우주 같은 곳도 아니다. ‘the city’라는 단어 자체를 별명으로 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뉴욕’이다. 그런 거라면야 방법은 너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갔어야 했다. 왔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와 함께.

ㅤ이 자리에 선 우리는,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됐다.

ㅤ“케빈 엄마가.”

​ㅤ그 말을 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태웅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ㅤ“케빈을 찾으러 뉴욕에 왔는데.”

ㅤ너는 지금도 「나 홀로 집에」를 좋아할까. 꼭 이기고 싶었던 경기에 아깝게 진 날, 끈질긴 마크가 붙어 스코어를 원하는 만큼 내지 못한 날, 꼭 그런 날이 아니라도 우울하고 슬프고 답답한 날에는 아직도 그 영화를 볼까. 그 영화를 보면서 두 도둑이 케빈의 집 앞 현관에서 뿌려둔 물이 언 것에 미끄러져 자빠지는 장면에서부터 키득거리기 시작해서 문에 매달아둔 토치에 도둑의 머리가 홀랑 타버리는 장면에서는 숫제 웃다가 쓰러져 흐느끼기까지 할까. 예전 그때처럼.

ㅤ“이 넓은 뉴욕에서 그 어린애를 어떻게 찾냐니까 경찰관이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해?”

ㅤ“애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애가 어디 있을 거 같냐고 물어보잖아.”

ㅤ가뜩이나 사람이 많은 크리스마스 시즌, 뒤늦게 공항에서 케빈을 잃어버린 것을 안 엄마는 이 넓은 뉴욕에서 무작정 케빈을 찾아 헤매다니다가 거리의 한 경찰관에게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아이가 어디에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떠올린다.

ㅤ어제 출장을 마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ㅤ“엄마는 그 말을 듣고 여기로 왔고.”

ㅤ“케빈은 여기 있었고.”

ㅤ거기 가보고 싶어, 라고 태웅은 말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록펠러 센터에.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곳에. 선물도 무엇도 필요 없고 가족을, 엄마를 돌려달라고 소년이 소원을 빌고, 그 소원에 응답하듯 엄마를 다시 만난 그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곳에. 그래서 가자, 하고 대답했다.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고. 그래서 알 수 있었다. 태웅을 다시 만난다면 여기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것은 아주 오래된 지키지 못한 약속이었고 이루어지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언제고 어느 때고, 윤대협은 이곳에서 이런 식으로 서태웅을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다.

ㅤ어디선가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트리에 매달린 수천 개의 전구가 그 바람의 서슬에 부딪혀 달각대는 소리를 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전구가 뿌려대는 빛의 가루가 그 바람을 타고 트리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봄바람에 떨어져 내리는 벚꽃잎처럼.

ㅤ그래서.

ㅤ“왜 이제 왔어.”

ㅤ다시 만난다면 지금이어야만 했다.

ㅤ“나 조금.”

ㅤ다시 만난다면 여기여야만 했다.

ㅤ“지치려던 참이었어.”

앵커 1

勝負·初めて·恋人·四季·年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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